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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한다

무슨 뜻인지 알았어요, 하지만 전 거절할게요! 에…… 에?!!! 후배 군, 설마 이 귀엽고 섹시하고 사람을 홀리는 매력적인 선배랑 데이트하고 싶지 않은 거야?! 섹시하고 사람을 홀린다는 얘기는 어디서 나온 거야…… 아무리 귀엽고 섹시하고 매력적인 선배가 데이트 신청을 했다고 쳐도, 이건 너무 갑작스러워요. 어떻게 바로 대답할 수 있겠냐구요. 그, 그럼 어떻게 해야 받아 줄 거야? 적어도 무슨 일인진 알려 줘야죠. 설마 아무 생각 없이 그랬다고 하지는 않겠죠. 알았어…… 사실은, 며칠 전에 친구랑 수다를 떨다가…… 나나쨩, 진짜 다음주에 우리랑 노래방 안 갈 거야? 농구부에 새로 온 잘생긴 애도 어렵게 꼬셨는데, 듣기론 활발하고 운동을 좋아하는 타입이 이상형이래. 이런 기회를 놓치면 너무 아깝잖아! 여, 역시 관두자. 다음 주엔 바쁜 일정이 있으니까, 너희끼리 재밌게 놀아. 에휴, 매번 남자를 소개해 주려고 할 때마다 핑계 대면서 도망 친다니까. 청춘은 짧다구. 나나쨩의 봄에는 어째서 새싹이 움트는 기미도 안 보이는 걸까? 내 스케줄은 항상 가득 차 있잖아, 주말에도 자주 운동부에 지원을 나가야 하고, 연애할 시간이 어디 있어. 차라리 "내 애인은 바로 이 학교야!" 라고 말하는 게 나을 수도. 말 돌리지 마, 난 진지하다고. 왜 그런 말도 있잖아. 연애할 시간은 스펀지 속에 물과도 같다, 짜내면 결국엔 나온다는 거지. 꼭 지금 누군가와 사귀지 않더라도 다른 이성을 알아가면서 나중을 준비할 수 있잖아. 근데 어째서 아예 생각조차 안 하려는 걸까, 설마…… 너 몰래 연애하고 있는 거 아냐? 남자친구가 허락을 안 해 줘서 친목 모임에도 안 나오는 거고? 무슨 헛소리야, 정말 바빠서 그런 것 뿐이야. 음…… 그렇겠지, 네가 정말로 연애를 하고 있었다면, 연애 위원회의 위원장인 내가 발견하지 못했을 리가 없지. 그런 조직은 언제 생긴 거야, 부회장한테 신고는 한 거냐고…… 후훗, 어쩌면 히쨩이 눈치채지 못한 걸지도. 난 최근에 나나가 나도 모르는 사람이랑 자주 노는 모습을 봤어. 근데 그 사람, 우리 학교 사람은 아닌 것 같던데. 그러고 보니…… 나도 며칠 전에 나나가 누군가랑 손을 잡고, 유즈가 데리고 있던 말라뮤트한테 쫓기면서 뛰어다니는 걸 봤어. 혹시 우리가 본 게 동일 인물은 아니겠지? 자, 잘못 본 거겠지, 손은 잡지 않았다고…… 아! 설마, 나나쨩이 항상 입에 달고 다니던 그 '후배 군'? 하아?! 나랑 후배 군은 그런 게 아니── 호오…… 나의 연애 레이더에 오류가 날 때도 있다니. 대단해! 나나 학생, 흔적도 없이 감추다니. 이제 제대로 말해 주실까! 누구야? 어떻게 알게 된 거야? 언제부터 사귀게 된 거야?! 너, 너희들이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라… 해명을 하려 든다는 건 무언가를 숨기고 싶어 한다는 것, 그리고 이건 곧 인정을 뜻하지. 모두의 눈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는데, 만약 궤변을 늘어놓는다면 보기 좋지 않을거야, 나나. 나는 이번 주말에 남자친구랑 데이트하기로 했으니까 너도 그 사람 데리고 와서 같이 놀자.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한번 봐야겠어. 내가 소개해 준 산더미 같은 미남들을 제쳐두고 너의 마음을 사로잡다니 말이야. 그럼 주말에 만나기다! 자, 잠깐, 히쨩. 내 말을 들어봐! 좋아요, 모든 게 이해됐어요. 근데 그냥 오해였다면 왜 바로 해명하지 않고, 사람까지 찾아가면서 가짜 연인 행세를 하기로 한 거예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내가 이러는 건 다 고충이 있어서야. 히쨩은 나한테 남자들을 많이 소개해 줬어, 엄청 적극적으로 말이지. 그래서 계속 거절하는 것도 뭔가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그래서 이왕 이렇게 오해하게 된 거, 이것도 기회라고 생각했어. 아예 내가 진짜로 연애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면 더 이상 남자친구를 소개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단 말이지. 그렇군, 일리가 있네요. 예전에 뉴스에서 결혼 독촉을 피하려고 일부러 가짜 연인을 고용해 집으로 데려갔더니 한동안 잠잠해졌다는 그런 얘기를 본적이 있다. 시라이시 선배도 비슷한 방법으로 그 열정적인 친구를 상대하려나보다. 부탁해, 후배 군! 이 일은 가장 믿음직스러운 후배 군한테 부탁할 수밖에 없어, 꼭 도와줘! ……알았어요, 최대한 협조해 줄게요. 하지만 들통나면 선배가 알아서 해결해야 돼요. 도와주기만 한다면, 뭐든 좋아! 고마워 후배 군! 오늘은 내가 쏠게, 먹고 싶은 거 다 시켜…… 아, 아, 아니면 좀 적당하게 시켜도 좋고, 용돈이 좀 빠듯해서…… 별것도 아닌 일인데, 너무 그럴 필요 없어요. 그럼 데이트 전에 우선 그날 뭘 할지 생각해 보죠, 만나자마자 들통나 버리면 너무 민망하니까요. 시라이시 선배가 불쌍한 태도로 내게 도움을 청하는 모습을 보며, 그녀의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후배 군'으로서 이런 때에 손을 뿌리치는 건 너무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사람들에게 그런 스캔들로 오해를 사게 된 것에는 나도 관계가 없다고 할 순 없으니…… 데이트 당일. 나는 특별히 일찍 일어나 외모를 좀 꾸민 다음 미리 만나기로 한 장소에 도착했다. 길가의 고양이와 잠시 놀고 있으니 시라이시 선배가 가방을 메고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에? 웬일이야, 후배 군이 먼저 와 있다니. 오늘은 데이트 날이잖아요? 선배가 절 기다리게 할 수는 없죠. 헤헤, 아주 좋아. 오래 기다린 건 아니지? 혹시…… 사실 오늘의 데이트가 너무 기대돼서 길에서 텐트 치고 밤새 기다린 건 아니지? 무슨 말이에요 그게, 한 삼십 분 정도 일찍 와 있었어요. 어때요? 오늘 데이트 자신 있어요? 걱정 마! 오늘을 위해서 준비를 많이 해 뒀다고, 연극은 끝까지 제대로 진행될 거야! 무슨 연극? 엣…… 조, 좋은 아침이야 히쨩, 언제 온 거야? 나나가 기운 넘치게 "연극은 끝까지 제대로 진행될 거야"라고 할 때부터. 망했다…… 이 데이트는 '시작'도 전에 '파멸'을 향해 전속력으로 돌진하고 있었다. 나나, 너희들 설마…… 무, 무슨 말을 하려고…… 데이트 이외에 다른 일정이 있는 거야? 예를 들면, 밤에 혼자 비밀 스케줄이 있다라던지? 에헤헤, 딱걸렸지? 아, 아하하하…… 난 또 무슨 말이라고. 난 그냥 오늘 데이트를 제대로 즐기자고 말한 것 뿐이야, 다른 뜻은 정말로 없었어, 히쨩 마음대로 추측하지 말라고. 그렇게 음침하게 웃는 것도 금지. 그래그래, 장난 안 칠게. 그러니까, 네 옆에 있는 게 바로 '그분'? 처음 뵙겠습니다, 전 PLAYER입니다. 우와, 엄청 정식적인 인사네. 그러지 말고, 너도 나나처럼 날 히쨩이라고 불러 줘, 내 옆에 있는 건 당연하겠지만, 내 남자친구야. 뭐라고 불러야 하죠? 이쪽은 히쨩, 남자친구분은 혹시 미남 씨? 엥? 점쟁이 아냐? 어떻게 내 이름이 미남인 걸 알았지? ……이게 진짜 이름이라고?! 자자, 소개는 이쯤하고, 그럼 계획대로 영화관으로 갑시다. 가자, PLAYER. …… 아, 그래요. 방금 그 넋 나간 표정은 뭐야? 무슨 생각 하고 있어? (소곤) 평소에 후배 군이라고 불리는 게 습관이 돼 버려서, 선배가 이름을 부를 때 제대로 반응을 못했어요. (소곤) 그렇군, 그렇다면 더 명확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호칭을 쓸까? 예를 들면 '달링' 같은? (소곤) 쓰읍, 제 손등의 털까지 일어섰어요. (소곤) 헤헤, 정말? 못 믿겠는걸. 달링~ (소곤) 그렇다면, 저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에?! 내가 그녀의 손을 잡자, 그녀는 놀란 고양이처럼 내 곁에서 튕겨져 나갔다. 앞에서 걷고 있던 히쨩이 그 기척을 느꼈고,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선 의심의 눈초리로 시라이시 선배를 뒤돌아 봤다. 응? 무슨 일이야 나나쨩? 아니에요, 지금 제 손이 좀 찬데, 차가운 손으로 손을 잡았더니 놀란 모양이에요. 그, 그래, 손이 왜 이렇게 차가워? 최근에 제대로 운동 잘 안했구나, 손 줘봐, 내가 손 따뜻하게 해줄게. 그래요…… (소곤) 진정해요, 연인끼리 손잡는 게 뭐 어때서요? 일일이 놀라지 말라구요. 하아 (소곤) 네 말이 맞아…… 근데 나한테만 뭐라 그러진 말라구, 너도 지금 얼굴이 빨갛잖아? (소곤) 이건 다른 이유 때문이에요…… 내 손을 따뜻하게 해준다는게 지금처럼 내 손을 잡고 입김을 불어 준다는 것일 줄이야! 나나쨩은 다른 거 보고 싶은 거 있어? 다른 게 없으면 계획대로 <로맨틱한 휴일>로 할게? 그걸로 하자. 영화관 할인권 있으니가, 내가 살게. (소곤) 제가 알아보니까 이건 예술 로맨스 영화 같은데, 선배 원래 이런 거 좋아하는 타입이에요? (소곤) 사실 별로 흥미 없어, 하지만 데이트에선 이런 영화를 보는 게 올바른 선택이잖아. ……에? 여기에 어째서 가면 히어로 신작이 있지?! 아, 테스트 상영이구나, 어쩐지. 선배는 가면 히어로를 좋아했었죠, 어릴 때 히어로 쇼에서 큰 활약을 한 적도 있었잖아요? 흐흥, 그건 내가 처음으로 괴물들이랑 정면으로 맞섰을 때였지. 아쉽게도 지금은 히어로 쇼를 보러 간다 해도 무대에 오를 기회는 없겠지만. 나나, 표는 다 샀어? 아, 미안. 잠깐만 기다려 줘, 바로 구매할게. 가면 히어로 영화를 보고 싶은 거 아니었어요? 나중에 동생이랑 볼게, 걔도 가면 히어로 좋아하니까. 그래도 오늘 보면 특전으로 주는 포스터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조금 아쉽긴 하네. 그렇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