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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영화를 본다

데이트를 하는 데 가면 히어로는 조금 이상해 보일 수도 있다. 시라이시 선배가 말했던 것처럼, 예술 로맨스 영화가 여기서는 올바른 선택이다. 원래 계획대로 <로맨틱한 휴일>을 보자…… 하…… 음…… 위험, 하품이 나올 뻔했다. 영화 전개 속도가 너무 느려서 잠에 들 정도다. 후우…… 후우…… …… 대단하군, 시라이시 선배는 나보다 한발 앞서 잠에 들었고 얕게 쿨쿨거리는 소리까지 들리기 시작했다. 난 선배가 달콤히 자는 걸 보고 가볍게 그녀의 손등을 꼬집었다. 쓰읍, 아파…… 시라이시 선배가 입을 열려 하자, 나는 재빨리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대며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리고 핸드폰을 꺼내 밝기를 최대한 낮추곤, 그녀에게 메시지를 써서 보여 주었다. (메시지) 영화가 아무리 재미없어도, 진짜로 잠들면 안 되죠! 연인끼리 로맨스 영화를 보는 건데, 낭만적인 분위기는 없다고 해도 잠들어 버리면 우리 사이가 들통날 수도 있잖아요. 시라이시 선배는 나의 뜻을 이해했는지 몸을 돌려 히쨩을 등지고선, 핸드폰을 꺼내 밝기를 낮추었다. (메시지) 큰일이야! 나 방금 잠들었는데 어쩌지?! (메시지) 히쨩은 영화에 푹 빠진 모양이라 선배가 잠든 줄은 몰랐을 거예요. 아무튼 이제 잠들지 말아요! (메시지) 알았어! 설산에서 조난 당하는 거랑 똑같네. 잠들면 끝장이야! (메시지) 그렇게 생사를 논할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메시지) 쯧쯧쯧, 뭘 모르네 후배 군. 이 정도의 각오가 있어야, 오늘 가짜 연인 챌린지에서도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고! (메시지) 먼저 잠든 당신에게 부디 그 각오가 남아있길. (메시지) 잠깐 방심한 것 뿐이야! 걱정 마, 이제 방심하지 않을게. (메시지) ……하지만 만일, 혹시라도 내가 또 방심해서 잠들어도, 날 버리고 가면 안 돼. 후배 군. (메시지) 그렇다면 제가 말짱한 정신으로 깨어 있길 기도하는 편이 좋을 거예요. 하지만 곧바로 이 '만일'의 상황은 실현되었다. 5분만에, 나는 곁에서 익숙한 호흡소리를 듣게 되었다…… …… (소곤) 꼬집. 으으! 이렇게 5분마다 그녀를 꼬집어 깨워야만 하는 상황이 되니 아무래도 내가 잠들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어이, 어떻게 매번 로맨스 영화만 보면 침까지 흘려가면서 자는 거야. 휴지 한 장 달라니까 대답도 없고. 하…… 암, 하지만 이 영화 너무 지루하단 말이야. 오 분만 넘겨도 대단한 거지. PLAYER, 너희들은 정말 대단한걸. 이걸 맨정신으로 끝까지 다 보다니, 대단해. 괘, 괜찮았어요, 영화 전개가 느리긴 했지만, 스토리가 나쁘지 않아서. 근데 나나가 졸지 않았다니 의외네, 전에 다 같이 로맨스 영화 보러 갔을 땐 누구보다 빠르게 잠들더니. 오늘은 특별한 사람이랑 함께 왔잖아, 그렇지? PLAYER. 쓰읍…… 그, 그래, 맞아 맞아…… 내가 영화관에서 시라이시 선배를 꼬집었던 걸 전부 합쳐도, 지금 그녀가 날 한 번 꼬집은 것만 못할 것이다. 그래도 참을 수밖에 없다. 미남 씨가 자고 있었다는 걸 진작 알았다면, 그녀 역시 고통을 참아가며 긴장하지 않고 편히 잘 수 있었을텐데. 이제 슬슬 점심시간인데, 먹고 싶은 거 있어? 근처에 괜찮은 식당이 있는지 찾아볼게. 그럴 필요 없어, 점심은 이미 생각해 뒀지. 쨔잔! 도시락을 싸왔다고. 엥? 도시락을 싸왔다고? 데이트엔 빠질 수 없지, 순정만화의 철칙이라고! 와아, 도시락을 싸들고 데이트라니, 진짜 정석대로네. 요즘 순정만화에서도 이런 전개는 별로 없는데. 에, 그, 그런가? 그렇다니까. 그래도 잘 됐다, 오늘 더블 데이트는 정말 사람을 제대로 찾았어. 짜잔, 나도 도시락이야. 데이트의 정석에 참여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나나 학생. ……흑 ……정통파 만세! 히쨩! 아…… 그냥 동지를 만났을 뿐인데, 그렇게 기뻐서 울 정도까진 아니잖아. 아, 배고프다. 보기만 하지 말고 어디 앉아서 나한테 먹여 줘야 스토리 완성이지. 이 근처에 괜찮은 공원이 하나 있었던 것 같은데, 다들 그쪽으로 가서 먹을까요? 공원에 자리를 잡은 뒤, 나는 시라이시 선배가 날 위해 만들어 준 도시락을 열었다. 준비한 음식을 보니 나는 눈이 빛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오?! 음식들이 전부 정상이야, 보기에도 맛있어 보이네. PLAYER, 나나쨩이 만든 도시락 처음 봐? 평소에는 안 해 주는 거야? 나나쨩은 동생 도시락도 만들어 주던데. 그…… 그건 평소엔 바빠 보이니까 부담 주기 싫어서 부탁 안 했던 거예요. 그리고 데이트에서만 먹을 수 있다면 좀 신선한 느낌도 들고, 먹었을 때 더 만족감이 있으니까요. 어? 그럼 많이 먹게 되면 질려서 맛이 없어진다는 거야? 그럴리가. 일단 좀 먹어볼게. 잠깐, 급할 거 없잖아. 에…… 나나야 왜… 어렵게 도시락을 싸왔는데, 첫 입은 당연히 내가 넣어 줘야지. 자, 입 벌려봐, 아~ 오호호, 도시락을 싸온 이유가 애정을 뽐내기 위해서였구나. 그럼 방해하지 않을게, 미남이랑 나는 저쪽으로 갈 테니까, 천천히 러브러브 하라고. ……(소곤) 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 건가……? (소곤) 당연하지, 이게 바로 순정만화의 정석 전개 아니겠어? 빨리, 손 저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