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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리를 도와 새끼 표범을 구한 다음, 포위를 돌파한다

새끼 표범의 촉촉한 눈망울과 힐리의 단호한 눈빛을 확인한 나는 이를 악물었다. [player]앵무, 혹시 케이지를 열어 줄 수 있어? [앵무]하아… 어쩐지 박형이 말하더라, 너랑 같이 있으면 매일이 스펙타클하다고. 한숨을 내쉰 앵무는 밖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려 케이지를 열고선, 내가 말하기도 전에 나머지 7, 8개의 케이지 또한 전부 열어 버렸다. 하지만, 안에 갇힌 동물들은 감금 생활이 길어져서 그런지 겁을 먹어선 밖으로 나오질 못하고 있었다. [player]설마 자기들을 가둔 나쁜 놈들이랑 우릴 한패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앵무]그럴지도. 하지만 어쨌든 자유를 얻긴 했으니, 도망가든 여기에 남든, 우리 코가 석자인 상황에서 이 정도면 할 만큼 해 준 거야. 힐리는 우리의 행동을 보고는 잠시 멍해져있었다. 우리가 왜 그녀를 돕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듯 해보였다. 그러나 밖에서 들려오는 발소리 탓에 따로 설명할 여유가 없이 힐리는 입을 꾹 다물고선 새끼 표범을 내 품에 안겨 주었고, 본인은 채찍을 쥐고 앞으로 나아갔다. [힐리]날 따라와. 케이지를 여는 데 시간을 지체하는 바람에 새들이 있던 창고 문 앞에 도착한 순간 경비들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리고 힐리는 날 앵무 쪽으로 가볍게 밀면서 말했다. [힐리]PLAYER, 달려. [player]힐리…… [힐리]날 믿어, 난 감당할 수 있으니까. 나는 품속의 새끼 표범을 바라보았다. 호흡이 더 약해진 걸로 보아 아무래도 우선은 여길 벗어나는 게 옳은 선택일 것 같았다. 앵무는 재빠른 몸놀림으로 눈앞에 있던 경비의 발을 걸어 넘어뜨린 다음, 내 옷깃을 잡고선 바깥으로 달렸다. 뒤에서는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 고통스럽게 신음하는 소리, 욕지거리를 내뱉는 소리가 난무했고…… 사이사이에 '쐐액' 하는 채찍 소리도 들려왔다. 마치 그날 점심, 따가운 햇빛이 비추는 골목길에서 힐리가 홀로 박새 일행과 맞서던 때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녀 혼자 싸우는 게 아니다. 왔던 길을 되돌아 달렸다. 다행히 돌아가는 길에 있는 창고의 문이 모두 열려있어서 수월하게 가장 바깥쪽 출입구까지 내달릴 수 있었으나 문 앞에서 어떤 젊은 경비와 마주쳤다. 바로 괴담 때문에 겁먹어서 밤을 새워 버린 히로시였다. 우리를 본 그는 본능적으로 무전기를 꺼내려 했지만, 그 순간 몽둥이 하나가 그의 뒤통수에 사납게 내려꽂혔다. 퉁! 젊은 경비는 천천히 쓰러졌고, 난 그의 뒤에 서 있는 박새를 발견했다. [박새]이쪽이여, 얼른 따라오소. 힐리는 우리가 창고에서 벗어나자 싸움을 굳이 이어나가지 않고 경비들을 따돌리며 우리와 함께 도망쳤다. 이어서 우리는 박새를 따라 길가에 주차된 봉고차에 올라탔다. [player]박새, 쟤만 괴롭히는 건 좀 너무한 거 아냐? 어제부터 엄청 시달리던 녀석 같은데. [박새]뭘 모르는구마잉, 이럴 때야말로 약한 고리를 공략 해야는 것이여. [박새]게다가 상황도 상황인디, 이 정도는 해야 쓰지, 뭣도 아니랑께. 봉고차가 코너를 돌던 와중, 경찰차가 우릴 스쳐 지나갔다. [박새]워메, 경찰들도 다 와부렀고마잉, 느그들은 이제 안심혀, 뒷일은 경찰들한테 맡기면 되니께. 내 품에서 표범을 받아든 힐리는 박새에게 주소를 하나 불러 주며, 우리를 이곳으로 데려다 달라고 했다. 박새는 우리를 주소지에 데려다 주고선 다시 떠나갔다. 도착한 곳은 어느 동물병원, 힐리는 익숙한 듯 문을 열고 들어갔고, 안경을 쓴 여자 수의사분이 우릴 반겨 주었다. 우린 표범을 건네주고선 표범이 진찰받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수의사]이 새끼 표범은 스트레스 반응에 영양 상태도 안 좋아서 조금만 더 늦었으면 생명에도 지장이 생겼을지도 몰라요. [수의사]다음으로 정밀 검진이랑 응급 조치도 몇 가지 진행할 예정이니까, 바깥에서 기다려 주세요. 나와 힐리는 바깥의 대기실에서 수의사분이 표범의 치료를 끝마치길 기다렸다. 그와중에 마음씨 고운 간호사분께서 물수건을 가져다 준 덕분에, 우린 몸에 묻은 먼지와 얼룩들을 닦아 낼 수 있었다. [player]그 새끼 표범이 걱정되는 건, 모히토 때문이야? 힐리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가로로 젓고선, 입을 열지 않았다. 그리고 꽤나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수의사분께서 밖으로 나와 일단은 무사하지만 병원에서 며칠간 경과를 관찰해야 할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힐리는 이에 안심한 듯, 피로에 굳어 있던 얼굴이 조금은 풀어진 것만 같았다. [힐리]PLAYER, 아까 물어봤던 건, 아직 뭐라고 답해줘야 할지 잘 모르겠어. 혹시 지금 괜찮다면 잠깐 같이 가고 싶은 곳이 있는데. [player]얼마든지, 난 항상 괜찮아. 하지만 힐리가 말한 장소가 기도춘이 있는 그 거리일 거란 건 예상하지 못했다. 오늘 여기에선 무슨 중요한 의례라도 있는지, 도로 양측이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힐리]오늘은 기도춘의 '오이란 퍼레이드'가 있는 날이라서 좀 소란스러우니까, 이쪽으로 와. 힐리는 날 이끌고 여러 골목길들을 계속해서 지나갔다. 다시 골목을 빠져나왔을 땐 구경하기에 딱 좋은 위치에 서게 되었는데, 이곳에선 거리의 모습을 한눈에 다 들여다볼 수 있었다. [힐리]저번에 기도춘에 갔을 땐 계속 병풍 뒤에 앉아 있어서 못 봤을 수도 있겠지. 지금 거리에 있는 저 사람이, 바로 토죠 쿠로네야. 힐리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자, 화려한 옷차림을 한 여자가 거리를 사뿐사뿐 걸으며 모든 이들의 이목을 잡아끄는 모습이 보였다. [힐리]사실, 네가 요 며칠간 날 따라다녔던 이유는 대충 짐작이 가. 내가 대체 뭘 하는지 궁금했던 거지? 게다가 아마 너랑 사이가 좋은 누군가한테 부탁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사라야? 아니면 라이언? 아니면 다른 사람이라던가? [힐리]하하, 긴장하지 마. 이거 가지고 뭐라고 할 생각이었으면, 애초에 여기까지 안 데려왔지. [player]그럼 날 데려온 건…… [힐리]네 질문에 대답을 해 주는 거라고 하지 뭐. 요 며칠간 많은 일을 같이 겪고 나니까, 내 이야기를 좀 들려줘도 괜찮겠다 싶어서. [힐리]사실 난 호랑이들의 품에서 자랐어, 8살이 되기 전에는 정글에서 살았지. 그러다 시드가 날 발견해서 인간 사회로 데려와 준 거야. [힐리]하지만, 나는 쭉 동물들도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힐리]그래서 공연이 없을 땐 자주 정글로 돌아가서 캠핑을 하면서, 같이 시간을 보내곤 했지. 그 덕분에 밀렵꾼들이 있다는 걸 알아채기도 했고. [힐리]난 그렇게 몇 년간 계속 수많은 밀렵꾼들이랑 싸워왔지만, 아무래도 혼자서는 그 수없이 많은 비극들을 전부 막아 낼 수가 없겠더라고. [player]이 정도로도 충분히 잘 한 거야, 힐리. [힐리]아니, 아직 부족해. Soul이 분열될 때 우리의 집을 지켜내지도 못했고, 죄 없는 동물들을 지켜내지도 못했어. 그녀는 여기까지 말한 뒤, 거리를 거니는 토죠 쿠로네를 바라보았다. [힐리]PLAYER, 네가 보기에 토죠 쿠로네는 어떤 사람인 것 같아? [player]음…… 고귀하고, 우아하고, 아름다운 사람이지. 힐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힐리]내가 보기에도 그래, 하지만…… [힐리]저 사람이랑 만날 때마다, 어째선지 그 몸에서 강대한 짐승만이 지닌 기운을 느낄 수 있었어. 야만스럽고, 강력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player]어째 토죠 쿠로네랑은 안 어울리는 묘사 같은데? [힐리]모순적이지? 하지만 내 직감은 항상 정확하거든. 그래서 내가 기도춘으로 가서 그 사람한테 먼저 접근한 거고. 야수라면 야수와 함께해야 하는 법이지, 안 그래? 말을 마친 그녀는 웃으며 날 바라보았다. [힐리]좋아, 그럼 이제 더 이상 털어놓을 비밀은 없어. 하지만 우리들만의 비밀로만 남겨두고 남들한테는 얘기하지 말아 줘. 괜찮지? [player]Soul의 사람들한테도, 맞지? [힐리]맞아, 이번 두루미 사건처럼 내가 하려는 일엔 항상 위험이 뒤따르니까 말이야. 만약 Soul의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결국엔 그 사람들도 위험 속으로 끌어들이게 되겠지. 비록 걱정하는 그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 이게 꼭 옳은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player]힐리, 너 혼자서 모든 걸 다 짊어질 필요는 없잖아. 예를 들면 나도 있고. 내 말을 들은 힐리는 날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우물거리며 말했다. [힐리]어쩌면 그럴지도. 적어도 요 며칠간은 같이 다니면서, 파트너가 있는 것도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때, 갑자기 내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발신자를 확인해 보니 아까 내가 신고를 했던 그 경찰분이었다. [경찰]PLAYER 님…… 맞으신가요? [player]네, 맞습니다. [경찰]아, 긴장하실 필요는 없어요, 그냥 경과를 알려드리려고 전화드린 겁니다. 전에 신고해 주신 그 야생동물 밀매 거점은 저희가 이미 정리했고, 몇 명이 도주 중이지만 단서를 추적해 위치를 알아냈으니 곧 체포될 겁니다. [경찰]그 창고는 범죄 증거물 은닉 등의 혐의로 인해 압류되었습니다. 갇혀 있던 동물들은 모두 야생동물 구호 기관으로 이관하였는데, 티벳여우 몇 마리는 병세가 너무 심했던 탓에 현장에 도달했을 땐 이미 숨이 멎은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아, 그때 언급하신 그 두루미 새끼 두 마리는 안전하니 걱정 마세요. [경찰]맞다, '삼청재'에 있던 그 두루미도 함께 구호소로 이관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에 표창장을 하나 댁으로 보내 드릴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번 일을 해결해 주신 공로로요. [player]네? 표창장도 주시나요? 그럼 혹시 Soul 쪽으로 보내 줄 수 있으실까요? [경찰]Soul이라면 그 순회 공연단 말씀이시죠? [player]네, 이번 일은 저 혼자 해낸 게 아니라, 모두가 같이 해낸 거라서요. [경찰]하하,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전화를 끊은 나는, 궁금해 하는 힐리에게 방금 전 통화 내용을 전달해 주었다. 힐리는 손으로 자신의 눈가를 가리고선 등을 벽에 기댔다. 비록 표정을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빙긋 휘어 있는 입꼬리를 보아하니 아마 기뻐하고 있는 모양이다. 꽤나 시간이 흐른 뒤, 감정을 정리한 듯한 힐리가 밝고 진솔한 웃음을 지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힐리]PLAYER, 파트너가 돼 줘서 고마워. 즐거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