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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시는 지리적 특성상 이 계절에도 해가 일찍 뜨는 편이다

이한시는 지리적 특성상 이 계절에도 해가 일찍 뜨는 편이다. 시간을 보니 아직 아침 7시 15분인데도 하늘은 이미 매우 밝았고, 살갗에 닿는 햇빛에서도 약간의 열기가 느껴졌다. 부지런한 직장인들은 출근길 여정을 시작하고 있었다.
나, 힐리, 그리고 앵무는 창고 입구 맞은편의 노점상에서 조용히 아침밥을 먹는 중이었다. 말수가 적은 두 사람 사이에서 태연하게 밥을 먹자니 앞으로 있을 임무로 긴장하는 건 나 한 사람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player]너희들 생각엔…… 오늘 우리가 임무를 잘 끝낼 수 있을 것 같아?
[player]응?
[player]이런 백주대낮에, 이 주변엔 오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데…… 우리가 정말 숨어들어갈 수 있을까?
[player]보통은 어둡고 잘 드러나지 않는 곳이어야 일 처리를 잘 할 수 있는 법인데.
[앵무]이제 박형의 실력을 봐야지. 보스도 말했잖아, 박새가 경비들의 주의를 끌 거라고.
[힐리]그 사람이 어떻게 준비했을지는 모르겠네.
[???]여기, 국수 대자 두개요~
잠입 얘기를 하던 와중 창고 앞 경비들과 같은 제복을 입은 사람 둘이 우리 옆자리에 앉았다. 그 둘이 포장마차 주인과 나누는 얘길 들어 보니, 나이 든 쪽은 타케시이며 젊은 쪽은 히로시라는 이름인 듯했다. 그들은 아침을 먹은 뒤 교대를 하려는 것 같았는데, 즉, 잠시 뒤에 저 사람들 사이로 슬쩍 잠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쓸모 있는 정보를 하나라도 더 건지기 위해 저들의 대화에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타케시]히로시, 오늘 안색이 좀 안 좋아 보이네. 무슨 일이야? 어제 제대로 못 잤어?
[히로시]하아, 말도 마요. 어젠 한숨도 못 잤어요.
[타케시]허허, 아주 제대로 놀았나 보네. 건강 챙겨가면서 놀으라고.
[히로시]놀리지 마세요 아저씨, 돌아가면 그 뚱땡이들이 또 말도 안 되는 소리들을 해댈 거라구요.
[타케시]알았다 알았어. 그럼 무슨 일인데?
[히로시]제가 사는 월셋방, 방음 잘 안 되는 거 아시죠?
[타케시]그래, 저번에 말했었지.
[히로시]어젯밤에 어디서 굴러먹다 온 건지도 모를 자식들이 하필 제 옆집에서 한밤중 내내 심령 게임을 한 거 있죠, 게다가 괴담 얘기까지 잔뜩 하던데.
[타케시]다 큰 놈이 아직도 귀신을 무서워해서야 쓰나, 미신 같은 건 믿지 말래도.
흘깃 곁눈질로 보니, 히로시는 무서운 기억이 떠올랐는지 얼굴이 창백해지고, 눈빛에는 공포가 서려있었다.
[히로시]무서운 이야기 같은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들이 무슨 '촛불 야화'라는 심령 게임을 하는 게 문제라고요. 사람들이 둘러앉아서 순서대로 무서운 이야기를 하는데,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자기 손에 들린 촛불에 불을 붙이고, 이야기가 끝나면 불을 끄거든요. 근데 이야기를 하던 도중에 촛불이 꺼지면 나쁜 일이 일어난다잖아요.
[타케시]마치…… 같이 놀기라도 한 것처럼 얘기하는구나.
[히로시]그걸 다 들리게 떠드는데 제가 뭘 할 수 있겠어요. 저도 괴롭다구요!
[타케시]그래, 알았다 알았어.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했길래 그래?
저 타케시라는 아저씨가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을 대신 해 준 덕분에, 나도 히로시의 괴담 얘기를 함께 즐길 수 있었다. 나를 본 힐리는 뭔갈 눈치챈 듯 웃으며 고개를 저었는데, 그러면서도 손에 든 수저를 내려놓은 뒤 옆 사람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히로시]많이 했죠. 예를 들어 철수라는 남자랑 그 사람의 여자친구인 영희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졸업 여행으로 비행기를 타고 외국에 간다는 거예요. 근데 비행기에 타자마자 철수의 머리가 순간 어지러워지더니, 비행기가 이륙 후 폭발할 거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는……
[타케시]무서운 얘기는 아니잖아. 게다가 왠지 귀에 익은데. 어디서 들었더라……
[히로시]아, 그럼 다른 걸로 하죠. 기억에 남았던 이야기가…… 영희라는 여자가 있는데, 그 여자의 남편인 철수는 택시 기사였대요. 근데 영희가 자다가 밤에 깨 보니 철수가 언제 돌아왔는지도 모르게 집에 돌아와 있더래요. 그런데 그 시간에 잠도 안 자고 혼자 베란다에 나가 아래를 빼꼼 바라보고 있었다는 거죠.
[히로시]영희가 철수한테 뭘 하고 있는지 물어보니, 철수가 살금살금 영희를 베란다 쪽으로 데려와선 이렇게 소곤거렸대요……
[히로시]"저기 우리 차 보이지, 뒷자리에 붉은 옷을 입은 여자가 있는 것 같지 않아?"
[히로시]영희는 철수가 헛것을 보나 싶었는데, 아래의 주차장을 내려다보니까 정말로 택시 뒷자리에 아이를 안고 있는 여자가 타고 있었더래요. 그리고 이어서 영희가 그 여자를 바라보는데, 순간 그 여자도 갑작스레 고개를 돌려 영희를 바라보기 시작했다고 해요.
[히로시]무려 10층 높이였던 데다가 한밤중이기도 하니 차를 알아보기도 쉬운 일이 아닌데, 차 안에 있던 사람이랑 눈이 마주치는 건 더더욱 이상한 일이죠. 영희는 깜짝 놀라 기절해 버렸고, 나중에 눈을 떠 보니 이미 날이 지나 있었대요. 게다가 철수한테 얘기를 꺼내 봤지만 철수는 아무런 기억이 없는 듯, 고민이 너무 많아서 악몽을 꾼 게 아니냐고 하길래 영희도 그냥 악몽으로 치부해 버리고 넘겼다네요.
[히로시]며칠 뒤, 철수의 퇴근이 늦어서 영희가 밥을 데워 주는데, 밥이 데워진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철수가 보이지 않았대요.
[히로시]그리고 영희는 철수를 찾으러 안방으로 들어갔는데, 문을 열자마자 철수가 베란다 난간에 앉아 영희를 향해 기괴한 미소를 지으면서 무슨 말을 읊조리더래요. "그것이 날 부르고 있어, 그것이 날 부르고 있어……"라며 중얼거리다가 그대로 밑으로 떨어졌는데……
[히로시]그 뒤, 영희는 조문을 온 택시 회사 사람한테서 얘기 하나를 전해 듣게 돼요. 회사 측에서 철수한테 배정해 준 택시는 이전에 교통사고를 내서, 임신한 여자 한 명을 치어 죽인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요.
[히로시]그리고 그날 밤, 조문하러 온 사람을 배웅해 준 영희가 홀린 듯이 안방의 베란다로 가서 밑을 내려다보자, 밑 공터에 아기를 품에 안은 붉은 옷의 여자랑 그 옆에 서 있는 철수를 발견했대요. 그리고, 철수가 영희한테 손을 흔들면서 중얼거리는 말이, "영희야, 이리 와……영희야, 이리 와……"
[히로시]어때요, 무섭죠? 전 어제부터 눈만 감으면 눈앞에 붉은 옷을 입은 여자가 어른거렸다고요!
[타케시]뭐…… 나쁘지는 않네. 약간 클래식한 괴담 느낌도 나는걸. 그런데 하나 궁금한 게, 왜 여자 귀신은 보통 빨간 옷을 입고 있지?
[히로시]타케시 아저씨, 자꾸 그러면 저더러 무슨 말을 하라는 거예요. 저는 무서워 죽겠는데 아저씨는 자꾸 트집이나 잡고.
[타케시]어허, 이게 다 네 주의를 딴 데 돌려 주려는 거 아니냐! 그래서, 겨우 그거 때문에 겁먹었다고?
[히로시]아뇨, 진짜 무서운 건 그 뒤예요. 이렇게 괴담이 여섯, 일곱 개쯤 나왔을까…… 그러다 옆방이 갑자기 조용해지는 거 있죠……
[히로시]궁금해서 벽에 귀를 대고 들어봤는데, 반대편에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전부 사라지기라도 한 것처럼 조용해진 거예요. 그래서 다시 그냥 누우려고 하던 순간, 갑자기 '쿵쿵쿵' 하는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죠.
[히로시]마치, 마치 누군가가 온 힘을 다해 벽을 두드리는 것처럼, 그리고 그 뒤에 어떤 남자의 비명소리가 들려오는데……
[타케시]비명? 뭐라고 비명을 질렀는데?
두려움에 가득 찬, 히로시의 벌벌 떨리는 목소리 덕에 내 호기심 또한 최고조로 치달았다.
[히로시]말투가 좀 특이해서 그런지 잘은 못 들었는데, 아무튼 끔찍한, 되게 처절한 비명소리였어요…… 근데, 이 한 마디는 들었던 것 같아요……
[히로시]'이짝으로 오지마러!!!'
[히로시]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비명이 쭉 이어진 뒤 옆집은 조용해졌고, 그 뒤부터는 아무런 말소리도 들려오지 않았어요. 타케시 아저씨도 알잖아요, 저 겁 많은 거. 그래서 확인해 볼 엄두도 못 내고 머리를 싸맨 채로 날이 밝기만을 기다렸죠.
[히로시]그러다 오늘 아침에 옆집 방 문을 보니까, 문에 부적 같은 게 빼곡히 붙어 있더라고요.
[타케시]부적? 어떤 부적인데? 무당이나 주술사가 쓰는 그런 노란 부적?
[히로시]그걸 어떻게 하나하나 살펴봐요, 너무 무서워서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출근하러 도망쳤죠.
이야기를 엿들은 나는 힐리 옆으로 꿈지럭대며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player]하늘이 우릴 도와주는 모양인데, 무서운 이야기 사용 방법이랄까나?
[힐리]내가 보기엔 뭔가 수상한데.
[player]그 얘기는?
[힐리]음…… 그냥 좀, 너무 절묘하다 싶어서.
타케시는 식사를 하는 속도가 빨라 십여 분도 되지 않아 수저를 내려놓았지만, 히로시는 어젯밤에 있던 일 때문에 정신이 없었는지 몇 입 먹지 않고 일어나 타케시와 함께 교대를 하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