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are here

오른쪽을 고른다

아마 저놈들한테 있어서 야생동물은 가장 귀중한 상품일 테니, 더 철저하게 안전한 곳에 가둬놨겠지.
[player]오른쪽, 디지털 도어록이 설치된 곳에 있을 것 같아.
[힐리]어차피 별다른 정보도 없으니, 나는 오케이.
[앵무]나도 상관 없어, 어떤 자물쇠든 다 열 수 있으니.
[player]그럼 우리가 대신 망 봐줄까?
[앵무]괜찮아.
앵무는 그렇게 말하며, 어느샌가 투명 테이프를 꺼내 손에 들고 있었다. 그는 테이프를 조금 뜯어 벽에 달린 키패드에 가볍게 붙이더니 손으로 몇 차례 문질렀는데, 다시 떼내어 빛에 비춰보자 몇몇 숫자가 있는 곳에 지문이 남은 걸 볼 수 있었다.
[player]숫자가 일곱 개 있네.
[앵무]이런 키패드의 비밀번호는 보통 여덟 자리야, 보아하니 중간에 숫자 8이 두 개 들어가는 모양인데.
[player]왜?
[앵무]여기 '8' 위에 있는 지문이 더 선명하고, 겹친 부분도 있지? 두 차례 눌렀던 것 같지 않아?
[player]듣고 보니 그렇네, 그럼 순서는 어떻게 알아내지?
앵무는 내게 대답하는 대신 테이프에 붙은 지문을 몇 차례 힐끔거렸다.
[앵무]원래는 다른 방법도 사용해서 알아내겠지만…… 이번엔 필요 없을 것 같네. 이건 생년월일이야.
그가 빠르게 키패드를 누르자 "지잉…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잠금이 해제되었고, 힐리가 힘을 줘서 당기자 창고의 문이 열렸다.
[앵무]이제 웹사이트에서 계정 비밀번호로 생년월일을 못 쓰게 하는 이유를 알았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생년월일을 쓰는 건, 편하단 말이야.
창고 안으로 들어간 우리는 순간 잠시 멍해졌다. 이 창고 안에 들어 있는 물건들이 이토록 중요한 것들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창고 안에는 문이 또 하나 있었고, 그 문 앞의 책상에는 경비가 한 명 앉아 있었다.
우리가 안으로 들어갔을 때, 열심히 손에 쥔 치킨을 뜯는 중이었던 그는 우리와 눈을 마주친 순간 멍을 때렸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더니 한 손에는 치킨을 든 상태로 재빨리 탁자 위에 놓인 무전기를 향해 반대쪽 손을 뻗었다.
힐리의 반응 속도도 굉장히 빨랐다. 앞으로 훌쩍 나아간 힐리는 재빠르게 경비를 콱 내려치고선, 쓰러지는 저 치킨 경비의 뒤통수가 바닥과 맞닿으려는 순간 상냥하게도 발로 슬쩍 받쳐 주기까지 한 것이었다.
[player]영화에 나오던 그 손날치기가 진짜 되는 거였구나?
[힐리]글쎄, 방금 건 채찍 손잡이로 때린 거라 잘 모르겠는데.
눈을 감은 채로 평화롭게 바닥에 드러누운 치킨 경비와, 미처 내려놓지 못해 바닥에 떨어져 더럽혀진 치킨을 본 나는 속으로 악어의 눈물을 몇 방울 흘렸다.
창고의 문을 닫은 앵무는, 다가와 바닥에 뉘여진 경비를 흘긋 보았다.
[앵무]속전 속결로 하자고, 저 녀석이 깨어나면 귀찮아질 테니까.
그렇게 말하며 경비의 몸을 한 차례 더듬은 그는 출입 카드를 하나 찾아냈다. 이어서 책상 뒤의 문 앞에 다가간 그가 카드를 긁자, 경쾌한 '찰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안에 들어온 우리는 아니나 다를까 귀중품들이 보관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저 일렬로 가지런히 놓여진 금고들에 두루미 두 마리가 들어갈 공간이 없을 거란 사실은 박새조차 알 만한 일이었다. 아무래도 잘못 고른 듯하다.
[player]아하하…… 다른 곳으로 가 보자. 역시 단번에 찍어서 맞추는 것처럼 운이 따르는 일은 나처럼 평범한 사람한텐 좀 어렵나 봐.
다시 왔던 길로 돌아가던 와중에도 치킨 경비는 아직도 기절해 있었다. 그를 중심으로 빙 돌아 문 앞에 선 앵무는, 문 틈으로 밖을 슬쩍 들여다 보고선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 우리를 불렀다. 그 뒤로 이동한 곳은 왼쪽의 쇠사슬이 걸려 있던 문 앞이었다.
앵무는 가방에서 도구함을 꺼냈다. 그 안에는 굵고 가는 철사들부터 수많은 종류의 드라이버까지 없는 게 없었다.
앵무가 가느다란 철사 둘을 꺼내 열쇠 구멍에 넣고선 가볍게 잠깐 만지작거리자 자물쇠가 열렸다. 그리고 이어서 재빠른 동작으로 떨어지는 자물쇠를 잡아채 떨어지는 소리가 나는 것도 막아냈다.
[player]이런 자물쇠는 좀 난감한걸. 우리가 들어가고 나면, 경비들이 순찰하면서 문이 열린 걸 눈치 챌 수 있을 거 아냐.
[앵무]그런 상황에선 두 가지 엔딩 뿐이지. 경비들이 밖에서 자물쇠를 다시 잠궈 우릴 안에 가두던가, 사람이 들어갔다는 걸 알아채고 안으로 우릴 잡으러 들어오던가.
[힐리]후자면 좋겠네, 싸움에는 자신 있으니까 말이야. 안에 감금돼버리면 귀찮아지잖아.
[앵무]그건 사실 괜찮아, 오기 전에 보스랑 약속했거든. 삼십 분마다 내가 메세지를 보낼 건데, 만약 두 시간이 지나도 우리가 안 나오거나 삼십 분 넘게 메세지를 보내지 않는다면 문제가 생겼다고 판단해 우릴 구하러 와 주기로 말이야. 그저……
[player]그저?
[앵무]그렇게 되면 양측 다 피해가 막심하겠지, 힘으로 뚫고 들어오는데 피해가 없을 리가.
[player]그렇게 무서운 이야기를 가볍게 하지 말라고.
[힐리]뒷배가 있으면 여기서 머뭇거릴 이유는 없지, 들키기 전에 최대한 두루미를 찾아보자고.
[player]응, 발견되기 전에 임무를 해내기만 하면 정면 충돌은 피할 수 있겠지.
문을 열고 들어가자 드러난 광경은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대략 200 제곱미터쯤 되어 보이는 빈 방이었는데, 반대편 벽에도 문이 달렸고, 그쪽 문으로 향하는 바닥에는 어떤 흔적이 남아 있었다. 힐리는 쪼그려 앉아 흔적을 살펴보았다.
[힐리]조류의 분변처럼 보이긴 하는데, 두루미의 것인지는 잘 모르겠네.
[player]느낌이 좋은걸, 방향을 짚어준 거나 다름 없으니까.
우리는 맞은편의 문을 향해 달려갔다. 이쪽도 마찬가지로 쇠사슬 자물쇠였는데, 역시나 앵무의 손에 간단하게 풀려 버렸다.
하지만 다음 방에 들어서자 나타난 것은 2~300 제곱미터 정도 되는 빈 방이었다. 유일하게 다른 점이라면 이곳의 앞과 우측의 벽에는 각각 문이 하나씩 있다는 건데, 두 문으로 향하는 방향의 바닥에서도 방금 보았던 분변 비슷한 것들을 찾을 수 있었다.
[player]또 이거야? 게다가 한 군데도 아니고 두 군데라니, 설마 무슨 함정 같은 건 아니겠지?
앞으로 나선 힐리는 이리저리 신중히 관찰했다.
[힐리]아마 함정은 아닐 거야. 한쪽의 분변 자국은 색깔이 짙은데, 건조된 정도로 보아하니 좀 더 이전에 생긴 자국 같아. 다른 쪽은 반쯤 마른 상태니까 아마 얼마 되진 않은 것 같고.
[힐리]일단 내가 보기엔 양쪽 다 동물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데,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는 나도……
[앵무]시간이 없으니까, 일단 아무 데나 들어가서 확인해 보자고.
앵무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여기서 멀뚱히 서 있어봤자 아무런 결과도 얻지 못할테니 말이다. 그렇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