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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아니, 누가 케이크 안에 두리안을 넣어! 미친 거 아냐?

나는 무표정하게 접시를 쿠츠지 앞으로 돌려놓았다. 절대 안 먹지, 오늘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건 절대 안 먹을 거다. 다만 예상 밖이었던 것은, 쿠츠지가 잠깐 침묵하더니 다시 접시를 내 앞으로 밀어놓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리저리 밀리는 접시 때문에 그 위에 있던 케이크가 한 조각 떨어지자, 두리안 냄새가 더욱 진하게 풍겨왔다. [player]…… [쿠츠지]먹을 거 남기면 천벌 받는대. [player]그러는 당신이나 남기지 말던가. 다시 접시를 밀어놓으려던 도중, 쿠츠지가 한 손으로는 접시를 꾸욱 붙잡은 채로 나머지 한 손으로는 턱을 괴고 딴청을 피우는 걸 눈치챘다. [player]당신 설마…… 두리안 못 먹어? [쿠츠지]안 먹어. [player]안 먹을 거면 왜 시켰는데? [player]…… [쿠츠지]이 전통 찻집에서 무슨 유행 따라 두리안 맛 케이크 같은 걸 만들 줄은 몰랐지…… 이름도 재료랑 전혀 상관 없는 걸로 지어뒀으니까 말이야. [player]아, 정보상인도 모르는 정보가 있는 거구나. 내 말을 들은 쿠츠지의 표정은 서서히 굳어갔다, 본인 스스로도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역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정보상 아니랄까 봐, 다시 원래의 표정을 되찾는 것도 금방이었다. [쿠츠지]괜찮아, 지금이라도 정보를 입수한 게 어디야. [쿠츠지]형씨의 공적은 높게 쳐 주도록 할게. [player]내가 '효'의 소속도 아니고, 그런 공적이 있어 봤자 뭐에 쓰겠다고…… [player]뭐, 굳이 쳐 주겠다면야 말리지 않겠지만. 그걸로 뭐 현실적인 걸 준다면 좋겠는데. [쿠츠지]현실적인 거라, 그럼 이번만 특별히 음식을 낭비하는 걸 허가하지. 쿠츠지는 그렇게 말하고선 직원을 불러 케이크를 치워 버리곤, 다시 다른 걸 주문하였다. 어느샌가 둘 다 한 시름 놓은 모양새였다. [player]겨우 그걸로? 당신이 두리안을 못 먹는다는 걸 내가 떠들고 다니면 어쩌려고? [쿠츠지]하, 형씨. 그런 걸로 내가 눈 하나 꿈쩍할 것 같아? 난 유리한 거래 아니면 절대 안 한다고. [player]아, 그래. 그러고 보니 거래는 언제 마무리할 건데? [쿠츠지]천천히 가자고. 곧 퍼레이드가 시작될 텐데, 구경부터 해도 안 늦으니 말이야. 쿠츠지의 시선을 따라 밑을 내려다보니, 언제 시작했는지 거리가 벌써 조용해져 있었다. 또한 약속이라도 한 듯 조용해진 사람들은 무언가를 기대하듯 '기도춘'의 입구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휴대폰에 표시된 시간이 정각을 가리키는 순간, 환호성이 터져나옴과 동시에 '기도춘'의 대문이 천천히 열렸다. 우선은 전통 복식을 한 남자 몇 명이 목판을 들고 걸어나와 도로의 양측에 섰다. 목판엔 '기도춘'의 문양이 커다랗게 그려져 있었고, 무언가 글씨도 써져 있었지만 크기가 작아 내용은 보이지 않았다. 그 뒤로는 아름다운 옷을 갖춰 입은 소녀 여섯이 손에 꽃바구니를 든 채로 양측으로 나뉘어 걸어나왔다. 그러면서 바구니에서 꽃을 집어들어 옆으로 놓으니, 정 가운데의 길에 딱 맞게 꽃이 떨어졌다. 리듬감 있는 음악과 함께 흰 버선을 신은 나막신이 문 밖으로 살포시 뻗어나와 반달 모양을 그리고선 다시 쏙 들어가는 광경을 보았다. 마치 매끄러운 잉어가 수면 위로 빼꼼 나왔다가 꼬리를 살랑 흔들고 다시 사라지는 모양새였다. 그리고 그걸 몇 차례 반복하더니, 화려한 옷을 입은 여자가 그제서야 몸을 드러내며 매혹적인 발걸음으로 걸어나와 꽃길을 또각또각 걸어갔다. 하지만 거리가 조금 먼 데다가 구슬을 엮어 만든 듯한 면사포를 쓰고 있는 탓에, 그 모습이 잘 보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쿠츠지는 딱히 관심 없다는 듯 창틀을 두드리며 가볍게 말을 이었다. [쿠츠지]저 사람, 저 사람이 바로 토죠 쿠로네야. 들려오는 곡조에 맞춰, 쿠츠지의 손가락이 리듬감 있게 창틀을 두드렸다. 마치 저 아래의 공연에 푹 빠져든 듯한 모양새였다. 이어서 토죠 쿠로네가 우리의 바로 밑을 지나가려 하자, 쿠츠지는 갑작스레 고개를 돌리곤 날 바라보았다. [쿠츠지]형씨, 거래를 하기 전에 알려줘야 할 게 있어. [player]뭔데? [쿠츠지]내가 형씨를 경매에 보내고, 그 뒤에 이것저것 시킨 일들. 왜 그랬는지 궁금하지? [player]그렇긴 해. 딱히 가치 있는 정보를 물어왔다는 느낌은 못 받았거든. [쿠츠지]아니, '형씨'가 갔다는 사실 자체가 가치 있는 정보였어. [player]그게 무슨 말이야? [쿠츠지]그날, 형씨가 무슨 꽃을 고르든 토죠 쿠로네를 만날 수 있었다고 하면 어쩔래? [player]셋 다 토죠 쿠로네의 꽃이었던 거야? [쿠츠지]아니, 그녀가 형씨를 보고 싶어했기 때문이야. [player]뭐라고? [쿠츠지]처음부터 난 내가 지닌 정보로 추측을 했을 뿐이야. 하지만 형씨의 행동이 그 추측을 검증해 주었지. 쿠츠지의 말을 들은 나는 더욱 혼란에 빠졌다. 나와 토죠 쿠로네 사이의 접점을 아무리 찾아본들, 그녀가 내게 먼저 다가올 이유 따윈 전혀 찾아볼 수 없었으니 말이다. [쿠츠지]형씨. 이전에 한 거래는 여전히 유효하지만, 형씨를 위해 거래의 조건을 바꿔 주도록 하지. 지금부터, 형씨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어. [쿠츠지]첫째, 약속에 따라 내게서 힐리에 대해 묻는 것. 요즘 그녀가 뭘 하고 다녔는지 알려 주지. [쿠츠지]둘째, 스스로를 위해 토죠 쿠로네와 관련된 것들을 질문하는 것. 그럼 내가 형씨한테 쓸모 있는 부분들을 추려서 알려 주겠어. [쿠츠지]생각할 시간을 줄게, 형씨가 진정으로 원하는 선택을 내릴 수 있기를 바라지. 난 쿠츠지의 말을 듣고선 고민에 빠졌다. 원래대로라면 힐리에 관한 것을 묻는 게 맞겠지, 이거야말로 내가 의뢰를 수락한 이유였으니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토죠 쿠로네가 어째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알고 싶기도 했다. 이제 와서 보니, 그날 그녀가 꺼냈던 이야기들엔 무언가 깊은 뜻이 숨어 있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평범했던 것들이, 실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던 걸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한참을 고민해 봐도 선택을 내리기는 힘들었다. 사라와 라이언의 걱정하는 얼굴이 내 머릿속에서 번갈아가며 나타났다가도, 동시에 귓가에 토죠 쿠로네의 나긋나긋한 속삭임이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쿠츠지]하아… 있잖아, 형씨가 좀 더 스스로를 위한다고 해도 탓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렇다면,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