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건 몰라도, 후룸라이드는 확실히 여름 섬에서 꼭 즐겨야 할 놀이 기구이다. 모터보트를 타고 높은 곳에서 물길을 따라 미끄러지며 머리 위를 뒤덮는 거대한 파도를 뚫고 느끼는 시원함은, 생각만 해도 두근두근 설렌다.
[player] 나는 후룸라이드도 체험하고 싶어. 치시, 너도 마음 바꾸고 같이 가는 게 어때?
[치시] 됐어. 너희 인간들이 추천하는 데이트 장소 중에는 후룸라이드가 없어. 이건, 너희 인간들조차 인정하지 않는다는 걸 의미해.
[치시] 이 몸은 할 일이 또 있어서, 그럼 이만 실례하겠어.
[-] 후룸라이드' 체험 종료
[player] 후……! 더운 날씨에 이만한 놀이기구도 없지…… 아, 감사합니다.
[-] 놀이기구 출구 휴식존에는 직원들이 막 놀이기구를 탄 우리들에게 뽀송뽀송한 수건을 건네며 매무새를 가다듬을 수 있게 해 주었다.
[-] 미끄럼틀의 내리막길 하류에는 물길을 따라 물총 발사대가 설치되어 있어서 발사대에 있는 관광객들이 물총으로 후룸라이드를 '공격'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도착 지점에 도달했을 때 우리는 절반 정도 흠뻑 젖어 있었다.
[player] 오노데라, 괜찮아?
[오노데라 나나하] 흠…… 역시 다 젖었어요…… 그래도……
[-] 오노데라 나나하는 의자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치마의 물기를 수건으로 닦아내고 있었다. 젖은 스타킹과 신발이 가지런히 한편에 놓여 있었다. 빨리 마르지는 않을 것이다. 입가에 미소를 띤 그녀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오노데라 나나하] 당혹스러움'이 적절한 타이밍에 등장해 주기만 하면…… 감정의 윤활제가 될 수 있어요.
[player] 응?
[오노데라 나나하] 음…… 운동 후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 목욕이 끝나고 머리카락에 맺힌 물방울……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맞고 온몸이 흠뻑 젖은 여름밤……
[오노데라 나나하] 이런 당혹스러운 순간이, 연인에게 더없이 사랑스러워 보이지 않을까요?
[오노데라 나나하] 전형적인 연애 소설 속에서는…… 이런 타이밍에 한쪽이 항상 상대방의 머리카락을 닦아주면서 분위기는 점점 더 로맨틱하게 무르익어가죠……
[player] 그, 그랬던 것 같아……
[-] 남아 있던 물방울이 오노데라 나나하의 머리카락 끝을 따라 떨어져 살짝 말랐던 치맛자락을 다시 적셨다. 옆에 사용하지 않은 수건이 있는 것을 보고, 나는 다가가서 물었다.
[player] 머리 말리는 거 도와줄까?
[오노데라 나나하] 좋아요, 부탁드려요.
[-] 나는 마른 수건으로 오노데라 나나하의 머리카락을 잡고 조심스럽게 닦았다. 그녀의 머리카락 사이의 축축함이 내 손바닥 중앙을 감쌌다.
[오노데라 나나하] …… 긴장하지 마세요. 적당한 세기에요. 머리카락이 잡혀서 아프거나 하지 않아요.
[player] 오, 오…… 알겠어.
[-] 오노데라 나나하가 말을 그렇게 하긴 했지만, 나는 여전히 아주 조심스럽게 손을 움직였다. 그녀가 나를 등진 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고, 말소리가 없어졌다.
[-] 나는 침묵 속에서 머리를 닦아주며 로맨틱한 분위기가 조성된다던 오노데라 나나하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우리의 지금 상황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
[남성 관광객] 하하하! 너 얼굴! 푸하하하! 화장이 다 번졌어! 빨리 빨리, 사진 좀 찍자!
[여성 관광객] 사, 사진 찍겠다고……? 얼씨구, 너 죽고 싶구나!
[-] 우리 뒤에 있던 관광객들이 놀이기구를 다 타고 나온 것 같다.
[어린이] 엄마! 한 번 더! 한 번 더 타! 제발요!
[관광객1] 으앗! 내 신분증 어딨지? 설마! 떨어뜨린 건 아니겠지!!
[관광객2] 야, 나와서 노는 거 보니 숙제 다 했나 봐? 뭐? 한 글자도 안 썼다고? 하하, 역시 내 친구, 나도!
[오노데라 나나하] ……
[player] ……
[-] 나와 오노데라 나나하 사이의 '썸'이라고 불러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를 그 분위기가 순식간에 깨졌다.
[-] 후룸라이드를 타고나서 출구로 나가자 치시와 딱 마주쳤다.
[치시] 어! 두 놀이기구 출구가 붙어 있었군.
[player] 재밌었어?
[치시] 나쁘지 않았어. 놀이공원에 온 모든 인간들의 '당혹스러운' 모습들을 다 봤지, 꽤 괜찮았어.
[-] 어째 치시의 놀이공원 즐김 포인트가 이상한 것 같네?
[치시] 그런데…… 이 몸이 오늘 검증해야 할 다른 곳이 더 있어. 이봐! 너 그 인터뷰 체험은 놀이기구 하나만으로도 충분해?
[player] 충분치 않은 것 같아, 다음에는 어느 놀이기구를 타러 가봐야 하나……
[오노데라 나나하] 뒤에 있는 여기로 가는 게 낫지 않겠어요?
[player] …… 이건…… 탈출 게임?
[치시] 어두운 환경속에서의 보호 욕구라…… 음.
[-] 치시가 손에 든 책을 빠르게 넘긴다.
[치시] 이곳 역시 이 몸이 검증해야 할 장소 중의 한 곳이야.
[player] 그럼 여기로 가자.
30분 후……
[치시] 으아아악! {var:ShakeChar}
[오노데라 나나하] 으아아악! {var:ShakeChar}
[player] 크허허허헉! {var:ShakeScene}
[-] 암흑 같이 캄캄한 밀실 속에서, 우리 세 사람은 놀라서 구석진 곳으로 숨어서 비명을 질렀다.
[player] 두 사람 여기 진심으로 추천한 거야? 이렇게 무지막지한 공포의 밀실이 정말 로맨틱한 장소라는 거야!??
[치시] 뭘, 뭘 잘 모르나 본데! 이, 이런 분위기, 그러니까 위험할수록 연인의 인격이 더 잘 드러나는 법이야! 기다려 봐, 이 몸이 저 '귀신'들을 유인하겠어!
[-] 말을 마치자, 치시는 밖으로 뛰쳐나가 허리에 손을 얹고 복도 끝을 향해 소리쳤다.
[치시] 이 봐! 잡아봐! 이 몸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player] 치, 치시……
[치시] 걱정 마, 이건 연애를 할 때 남자가 반드시 감당해야 하는 거라고 책에 적혀 있어.
[player] 그게 아니라, 너 방향이 틀렸어. '귀신'은 네 뒤에 있어!
[치시] !!!! 으아아아악!!! {var:ShakeScene}
[-] 밖에서 한 바탕 우당탕탕 하는 '싸우는 소리'가 점점 멀어져 가는 것이 들린다. 나는 잠시 주변을 살핀 뒤 옆에 있던 오노데라 나나하를 툭툭 쳤다.
[player] 가자, '귀신'이 치시를 쫓아갔어. 우리가 탈출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야.
[오노데라 나나하] 좋아요.
[player] 바닥에 장애물들이 굉장히 많아, 오노데라 조심해.
[오노데라 나나하] 꺅!
[player] 어? 오노데라 괜찮아!
[-] 조심하라고 말을 하자마자, 오노데라가 나나하가 넘어졌다. 나는 재빨리 다가가 그녀를 부축했다. 그녀의 호흡이 조금 거칠었다, 그런데 돌연 웃음을 터뜨렸다.
[오노데라 나나하] …… 하하, 정말 재밌는 체험이네요.
[player] 뭐라고? 넘어진 게 뭐가 재밌어, 이런 때 과한 망상은 좀 자제해.
[오노데라 나나하] 그게 아니라, 어둠이 감각을 예민하게 하네요. 당신의 쿵쾅거리는 심장소리가 너무 잘 들려요, 숨소리 마저…… 당신 긴장하고 있네요.
[player] 그, 그래?
[오노데라 나나하] 네, 서로를 제대로 보지 못할 때 오히려 상대의 존재를 더 잘 느낄 수 있어요…… 이런 특별한 스킨십은, 연인에게 매우 중요해요.
[player] …… 넌 그렇게 생각하는 구나, 그래서 여길 추천한 거구나.
[-] 오노데라 나나하가 탈출 게임에 흥미를 가진 포인트는 치시와는 완전히 달랐다…… 그런 관점으로 해석한다면, 이곳 역시 로맨스를 키우기 적합한 놀이 시설임이 분명하다.
[오노데라 나나하] 네…… 그래요……
[player] …… 오노데라?
[-] 사색에 잠긴 사이, 오노데라가 갑자기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순간 내 숨결은 그녀가 풍기는 향기로 가득 찼다.
[player] !
[player] 잠깐잠깐…… 무슨 뜻인지는 잘 알겠어…… 굳이 보여줄 필요는……
[오노데라 나나하] 찾았어요.
[player] 엥?
[오노데라 나나하] 탈출 아이템, 당신 뒤에 있었네요.
[player] …… 아.
[치시] 너희 방금 너무 느렸어! 하마터면 내가 '귀신' 한테 잡힐 뻔했다고!
[player] 고생했어, 네가 아니었으면 우리가 이렇게 빨리 빠져나오지는 못했을 거야.
[치시] 뭐, 나쁘지 않았지. 이 몸이 실력 발휘를 좀 했을 뿐이야.
[치시] (작은 목소리로)갑자기 이렇게 띄워주니까…… 화내기 민망하네.
[-] 나는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편으로는 손에 든 평가 기록으로 가득한 노트를 뒤적거렸다. 테라사키 치호리에게 보고하기에 이것으로 충분할지 잘 모르겠다.
[테라사키 치호리] PLAYER.
[player] 치호리?
[-] 고개를 들어 쳐다봤다. '호랑이도 제말 하면 나타난다', 정말이다.
[테라사키 치호리] 다른 주제의 평가 자료를 정리하던 중이었어. 마침 여기에 있는 널 발견하고 어디까지 진도가 나갔나 보려고 겸사겸사 왔어.
[player] 그런대로 잘 진행되고 있어. 이 두 친구 덕분에 많은 체험도 하고 깨달음도 얻을 수 있었지.
[테라사키 치호리] 그래? 내가 사람을 제대로 봤군.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제가 진행 중인 급한 업무가 끝나면 식사 대접 할게요.
[player] 업무?
[테라사키 치호리] 맞아, 그 주제는 너에게 줬지만, 다른 주제의 놀이기구 평가 업무가 아직 남았어.
[player] 그렇구나, 처음은 낯설지만 두 번은 익숙하지. 주제가 뭐야? 내가 도와주면 빨리 끝낼 수 있잖아.
[테라사키 치호리] 그래? 좋아. 다른 평가 주제는 '공포의 놀이동산'이야.
[player] 어엇…… 공포의 놀이…… 뭐?
[치시] 이 몸은 할 일이 또 있어서, 그럼 이만 실례하겠어……
[오노데라 나나하] 죄송해요…… 순수 공포 소설은 사양할게요.
[player] 어?
[테라사키 치호리] 다들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버렸네, 식사 대접은 다음에 해야겠어. 넌 열정이 넘치는 모양이니 나랑 같이 가자, PLAYER.
[player] 그…… 아니, 그 공포의 밀실 만큼은 다시 갈 필요가 없을 것 같아…… 살려줘!{var:ShakeSc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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