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고백하기'를 추천한다
난 그렇게 게임기를 건네받곤, 소라의 놀란 눈빛을 받으며 커서를 '지금 바로 고백'이라는 선택지 위에 가져다 놨다.
[이치노세 소라]왜 그 선택지를 고르려는 거야? 혹시 다른 공식을 대입해 본 거야?
[player]음…… 이건 그냥 감이야.
[이치노세 소라]그러니까, 뒷받침할 만한 데이터가 따로 없다는 거야?
[player]넌 아직 연애 게임의 핵심을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야~ 사람의 감정은 데이터가 아니라고, '클리어'를 보장하는 확실한 데이터 같은 건 없어.
[player] '사랑'은 숫자로 표현할 수 없어. 사랑에 영향을 주는 요소가 너무 많거든. 시간, 장소, 사람…… 감정은 각기 다른 상황에서 변화가 생기는 법이야. 하지만 진정성과 용기는 언제나 강력한 필살기가 될 수 있지. 그건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고, 약간의 부족함을 채워 줄 때도 많아.
[이치노세 소라]그래도……
[player]난 그냥 너한테 조언을 해 줄 뿐이지, 결국 이 열쇠를 돌릴지 말지는 네 선택에 달렸어. 혹시 알아? 아주 작은 용기로도 성공할 수 있을지?
소라는 고개를 숙인 채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다. 난 소라가 너무 오랫동안 반응을 보이지 않아서 내 제안을 거절할 줄 알았지만, 결국 확인 버튼을 눌러주었다.
[이치노세 소라]난 이런 방식을 여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네 감만큼은 믿어보고 싶어.
오늘 같은 밤이라면 폭죽이야말로 가장 로맨틱한 아이템일 것이다. 하늘을 날아 이글거리는 열기로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내고는 지상에 있는 연인들을 빛나게 하니까.
['이치노세 소라']지금 이런 말을 하는 게 어울릴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너도 내 마음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 '류우시', 널 좋아해!
펑!! 마치 '이치노세 소라'의 용기에 갈채를 보내듯, 불꽃이 타이밍에 맞춰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해 냈다. 불빛 아래에서 여자아이의 얼굴은 붉어졌고,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의 발끝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류우시']사실, 나…… 나도야……
띠리링…… 띠리링……
시계의 알람이 본분을 다하며 꿈속의 주인을 깨웠다. 안타까운 것은 그 노력이 결국 주인의 칭찬을 이끌어 내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시계의 주인은 이불에서 손을 뻗어 알람을 무참하게 꺼버렸다.
침대 위의 남자는 몸을 돌리며 다시 꿈속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꿈의 문턱에서 여자아이와 포옹을 하던 장면이 떠올리자 정신이 맑아졌고, 펄떡이는 물고기 마냥 몸을 일으켰다.
['이치노세 소라']나…… 어젯밤에 '류우시'한테 고백한 건가?!
방금 꿈에서 깨어난 남자는, 까치 머리를 한 상태로 그 자리에 앉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자신의 두 손을 바라봤다.
['이치노세 소라']손까지 잡았던 것 같은데…… 진짜인가? 아니면 아직 꿈속에 있는 건가?
그는 재빨리 일어나 휴대폰을 가져왔다, 그 안에서 현실을 상기시켜 한 가닥의 실마리라도 찾기 위해서.
['이치노세 소라']응? '류우시'가 메시지를 보냈잖아?
['이치노세 소라']r=a(1-sinθ)…… 잠깐, 이건……!!!
기쁨이 가득한 그의 표정은, 입꼬리가 씰룩거리며, 뺨에서도 환희가 넘쳐 보였다. 그는 기쁨으로 떨리는 손가락으로 한 글자씩 답장을 써 내려갔다.
y=1/x, x^2+y^2=9, y=|-2x|, x=-3|siny|, 메시지 편집 완료, 발송 완료.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오며 화면이 점점 흐려진다. 그리고 불꽃이 수놓은 밤 하늘 아래, 서로를 껴안고 있던 순간을 회상하기 시작했다.
화면 속에 깃든 행복감이 현실 세계에까지 정확하게 전달되고 있었다. 소라마저 슬슬 눈이 반달 모양이 되려고 할 정도였다.
[이치노세 소라]드디어 클리어네.
[player]풋~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게임이 아니라 무슨 세기의 난제라도 푼 줄 알았을 거야. 근데…… 주인공들이 마지막에 서로 발송한 메시지는 무슨 내용이야?
[이치노세 소라]음, 말로만 설명해선 아무래도 이해하기 어렵겠지. 내가 문제를 풀어서 보여줄게.
연애 게임과는 달리 숫자와 연관된 세상은 소라의 영역 그 자체였다. 소년은 속으로 자신감을 내뿜고 있었으며, 나도 이 순간만큼은 소라의 나이를 잊을 것만 같았다.
[이치노세 소라]이건 '카디오이드'야.
['류우시']응?
[이치노세 소라]전해지기로는, 한 천재 수학자가 고고한 공주님을 사랑하게 되었고, 그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고안한 특별한 방정식이라고 해.
[이치노세 소라]방정식의 답은 바로 하트 모양을 한 곡선이야, 이 곡선은 후세에 '심장형'이라고도 불리게 되었지. 주인공의 답장 메시지도 같은 의미야.
이치노세 소라는 연산을 한 종이를 내 앞으로 들이밀며, 내가 내용을 봐 주길 바라고 있었다. 난 위에 있는 복잡한 연산 과정은 생략하고, 바로 가장 중요한 내용을 포착했다.
주인공이 답장으로 보낸 네 개의 방정식이 그려낸 곡선을 일렬로 세워 보니, 'L O V E'와 같은 이미지가 조합되었다.
[이치노세 소라]난 널 좋아해, 이게 바로 답이야.
[player]게임 개발진 중에 분명히 이과 출신이 사람이 있을 거야, 아니면 어떻게 이런 고백 방법을 생각해 냈겠어.
[이치노세 소라]어쩌면 캣챗에서 본 걸지도 모르지. 시대는 변했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수단도 많아졌잖아.
[player]그러고 보니까, 내가 방금 휴대폰으로 검색해 봤는데 이 게임엔 이것 말고도 다른 엔딩들도 있는 것 같아. 캣챗만 봐도 서너 가지는 나오는데.
[player]관심 있으면, 다른 엔딩도 한번 봐볼래?
그 말을 들은 소라는 곧바로 노트를 덮고는 데이터를 통해 감정을 계산하는 방식을 포기했다.
[이치노세 소라]시나리오상에서 고르는 선택지는 각자 다 다르겠지만, 해피 엔딩을 볼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겠지. 그래서 난 데이터를 통해서 가장 정확한 루트를 계산해 본 건데, 계속 실패만 했어.
[이치노세 소라]게임 디자인의 문제가 아니라면, 이건 아마 아직 더 많은 걸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겠지.
[이치노세 소라]그럼 다시 해 볼게, 이번엔 혼자서도 해피 엔딩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player]응, 믿고 있을게.
당연히 이상과 현실은 거리가 있다, 그리고 게임이 시작되자 그 사실은 더욱 명확해지기 시작했다.
[이치노세 소라]음, 여주인공은 자기가 화나지 않았다고 했었는데, 왜 호감도가 떨어졌을까?
[이치노세 소라]이상해, 이번에 여주인공은 수요일에 데이트를 요청했어. 아까 했을 때는 분명히 거절하면서 이날 시간이 없다고 했었는데?
[이치노세 소라]여주인공이 말한 "아무거나 먹자"가 튀김, 해산물, 구이, 밀가루를 먹고 싶지 않다는 의미가 숨어 있었다니. 내가 뭔갈 놓쳤던 건가?
[player]……
이번에 난 소라가 의문을 표해도 미소만 지을 뿐 일부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지켜보고 있자니, 아무래도 클리어를 하려면 아직 많은 것들을 배울 필요가 있을 듯했다.
[이치노세 소라]PLAYER, 내가 전화해서 방해한 건 아니지?
저번 클리어 이후로 난 매일 소라에게 연락을 받고 있다. 우린 학교에서 퍼지는 소문이나 마작 테이블 위에서 벌어지는 격렬한 상황을 서로 공유했고, 그것은 어느새 우리 둘만의 습관이 되어 있었다.
물론, 가끔은 차가워질 때도 있었다. 소라는 아직 능동적인 표현을 배워가는 과정에 있었기에, 가끔 사소한 트러블이 일어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player]콜록…… 당연히 아니지. 근데 소라,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야?
[이치노세 소라]음, 방금 기침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혹시 감기 걸렸어? 병원에는 가 본 거야?
[player]어제 밤 새는데 좀 추웠나봐. 걱정 마, 금방 괜찮아져.
[이치노세 소라]넌 나한테 있어서 중요한 사람이야, 그러니까 아프면 안 돼.
소년의 말은 직설적이면서도 뜨거웠고, 나이 든 사람들 사이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솔직함이 느껴졌다. 난 전화를 끊기 전까지 소라의 변화에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이런 변화는 나쁘지 않다, 소라를 처음 알았을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훨씬 활발해진 느낌이었다.
[player]게임이 한 사람한테 이렇게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 건가? 소라가 점점 게임 속 주인공이랑 닮아가는 것 같기도 하네. 약간 따뜻한 남자 같기도 하고.
띵동…… 하지만 휴대폰의 알림이 갑작스럽게 울리며 나의 생각도 끊어졌다. 메시지에는 "따듯한 물을 많이 마셔"라는 소라의 당부가 쓰여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생각을 바로 부숴 버렸다.
[player]따뜻한 남자라니…… 역시 내 착각이겠지.
[player]하지만 소라는 확실히 학습 능력이 탁월하네, 일주일 만에 이런 새로운 소통 방식에 적응해 내다니.
그렇게 전화기 너머의 소년을 떠올리자, 난 갑작스레 호기심이 발동했다.
다음엔 소라한테 새로운 게임을 줘서 테스트해 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엔 클리어 후에 어떤 모습이 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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