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웅─ 우웅─ 우웅…… 우웅─ 우웅─ 우웅─
난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일종의 기시감을 느끼곤 한다. 전에도 이런 일을 겪지 않았나?
사람들은 보통 이를 뇌의 해마가 일으키는 반응이라고 하지만 누군가는 시공간의 어긋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느 평행 세계에서의 자신이 어떤 일을 겪고, 다른 평행 세계가 교차하는 순간 공명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나'는 분명히 이 일을 겪었던 기억이 있는데, 또 아닌것 같기도하고……
예를 들어, 휴대폰이 미친듯이 울리는 지금 이 상황. 아직 확인해 보지도 않았지만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저건 시라이시 나나 선배의 전화이고, 왜인지는 몰라도 딱히 받고 싶진 않다는 그런 느낌이다.
휴대폰은 쉬지 않고 2분 정도 더 울려대더니 조용해졌다. 그리고 곧이어 문자 메시지의 알림이 울려댔다.
나는 한숨을 내신 뒤 이불 속에서 기어나와 휴대폰을 집어 얼굴 앞에 대고 몇 차례 흔들어댔다.
좋아, 얼굴 인식 실패. AI는 매일 내게 고민거리를 던져 주곤 한다. 오늘 나와 어제의 내가 도대체 어디가 다르다는 거지?
비밀번호를 눌러 잠금을 해제하니 아니나 다를까 부재중 전화와 문자 메세지는 모두 시라이시 선배가 보낸 것이었다…… 다른 평행세계의 나 자신, 수고했다.
[시라이시 나나](메시지)와~! 후배군! 설마 아직도 자는 건 아니지?!
[시라이시 나나](메시지)이렇게 전화를 걸어 댔는데도 안 일어나다니, 혹시 무음인건가? 그럼 문자로 얘기하지 뭐.
[시라이시 나나](메시지)우선! 쏘리 쏘리~ 어제 다 같이 아침부터 수영장 파티 준비를 하느라 전화를 못 받았어.
[시라이시 나나](메시지)수영장 파티가 뭔지 알고 싶은 거지, 그치?
[시라이시 나나](메시지)후후! 지금 후회하고 있지? 후! 회!
마지막 메시지는 사진과 함께 왔다. 햇살, 수영장, 수영복, 미소녀. 이 지긋지긋한 계절을 그나마 빛나게 해 주는 단비 같은 풍경이었다.
오늘의 기온은 26-32℃.
하지만 괜찮다, 난 참아 줄 수 있다. 모든 게임이 가을에…… 아니, 아무 도시의 가을에 수영복 파티가 있는 건 아닐 테니까 말이지.
시라이시 선배의 후회하고 있냐고 묻던 건 어제 하루종일 내 문자에 답장을 안 한 그것일 거다. 하.
나는 가볍게 메시지 화면을 닫고,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은 뒤 힐리와의 약속을 위해 집을 나서기로 했다.
힐리와 만나기로 약속한 곳인 '기도춘'에 도착했을 때, 저멀리 입구 근처 공터에서 힐리는 나를 미리 기다리고 있었고, 그녀를 땨라온 흑표범 모히토는 힐리의 발치에 드러누워 게으르게 하품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쪽으로 다가갈수록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공터라고 한들, 이곳은 무려 그 기도춘이다. 그런데 주위가 너무 조용한 것 아닌가?
의문을 품고 주위를 둘러보자,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 근처를 멀찍이 비켜가는 모습이 보였다. 공터 맞은편 기도춘의 문 안쪽에서도 사람 둘이 머리를 빼꼼 내밀고선, 이쪽 방향을 보며 불안하다는 듯 무언가를 속닥이고 있었다.
보아하니 문제는 모히토 때문인 것 같았다. 하긴, 흑표범은 원래 흉폭한 포식자다. 속도든 힘이든 이곳의 모두는 아마도 그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음…… '아마도'이란 말이 애매하다면, 일단 적어도 나는 절대 모히토를 못 이긴다고 말해 두도록 하겠다. 뒤에서 공격을 먹여도 불가능하다.
문 뒤 쪽에 있는 두사람, 같은 제복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기도춘의 직원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들은 모히토가 이곳에 엎드려 있는 게 기도춘의 영업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렇다고 안으로 들여보내자니 혹시라도 고객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 중 누구도 모히토 앞으로 다가올 용기가 없는 것 같아 보였다.
[player]좋은 아침, 힐리.
[힐리]안녕…… 생각보다 좀 더 일찍 왔네.
힐리는 가로등 기둥에 여유롭게 기댄 채로, 살랑거리는 모히토의 꼬리를 슬쩍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그리고 모히토는 눈을 반쯤 감은 채로 꽤나 편안하게 늘어진 모습이었는데, 보아하니 저 둘은 자신들이 주위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공포를 심어주고 있는지 모르는 모양새였다.
임무를 짊어지고 있는 나는, 내 일을 함과 동시에 '기도춘'의 직원들을 도와 이 문제를 해결해 주기로 했다. 뭐, 애초에 나와 힐리가 여기에 온 이유부터가 바로 '기도춘'에서 토죠 쿠로네를 찾아 다친 두루미를 주운 그날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는 것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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