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이 빨간 헬멧이 더 멋진 것 같다. 게다가 중요한 건, 저건 무려 나데시코가 수개월치의 월급을 예약금으로 걸고 또 수개월간 부업을 뛰면서 사려고 이를 갈다가, 마지막에 돈이 모이기 직전 품절되어 예약금을 그대로 돌려받았던 모델이었다!
손에 잡고 보니 새 물건 같은 티가 났다. 갓 포장을 뜯은 물건 특유의 플라스틱 냄새를 맡으니, 역시 돈이 좋긴 좋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빨간 헬멧을 쓴 나는 쿠츠지의 뒤에 앉았다. 쿠츠지가 몰고 온 건 커스텀된 '타이거 렉스'라는 모델이었다. 개인적으론 동사의 '드래곤 렉스' 모델이 더 마음에 들지만 말이다. 이 모델들은 수시로 내 캣챗의 타임라인에 뜨는, 어마어마한 가격 괴물들이었다.
이쯤에서 슬슬 내 친구인 나데시코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 할 것 같다. 내가 시중에 출시된 대부분의 바이크들에 대해 이렇게 훤히 알게 된 건 나데시코의 영향이 크니까. 나데시코가 갖고 싶어하는 바이크일수록 내 캣챗에 더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그녀가 갖고 싶어하는 바이크일수록 내 지식의 수준도 깊었다.
그나저나, 이 바이크 정말 대단하다.
마치 산속을 쏜살같이 달리는 호랑이 위에 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심지어 안전벨트도 없이! 그리고 난 튕겨 나가지 않기 위해서 쿠츠지의 겉옷을 필사적으로 쥐어 잡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찌익' 비스무리한 소리가 들릴 때마다 옷이 찢어진 건 아닐까 싶어 깜짝 놀라곤 했다.
빽빽한 빌딩 숲에서 바이크를 타는데 어떻게 산악 자전거를 타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수 있는 걸까.
나는 덜컹거림 속에서 나데시코의 뒷자리가 안겨 주는 안정감이 그리워졌다. 그리고 동시에 다시는 쿠츠지의 바이크는 타지 않으리라 맹세했다.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아직도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자, 나는 멀미를 참으며 간신히 쿠츠지에게 물었다.
[player]얼마나 남았어? 언제 도착하는 건데?!
길가에 바이크를 세운 쿠츠지가 고개를 돌리곤 날 바라보았다.
[쿠츠지]응? 형씨가 뒤에서 꽤나 즐기는 것 같길래, 몇 바퀴 더 돌고 가려고 했는데.
[쿠츠지]왜, 벌써 못 견디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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