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난 저 파란색으로 할래.
[쿠츠지]왜?
[player]쿨하고 멋있는 나한텐 저게 더 어울리니까.
[player]……
[쿠츠지]사람이 기껏 새 헬멧을 준비해 뒀더니만, 굳이 남의 걸…… 하아, 됐다. 형씨 하고 싶은 거 다 해.
쿠츠지는 궁시렁거리면서도 핸들에 걸려 있던 파란 헬멧을 건네주었다. 새것 같아 보였던 그 헬멧은 관리가 잘 되어 있었고, 위에 새겨진 멋진 로고가 그 값비싼 가격을 짐작케 했다.
[쿠츠지]자, 잘 쓰도록해, 친히 고르신 헬멧.
난 그렇게 만족스럽게 헬멧을 받아 머리에 쓰고선 쿠츠지의 뒤에 앉았다. 역시 비싼 물건은 돈값을 한다고, 이 비싸 보이는 이 헬멧에는 다 그만큼의 이유가 있을 거다.
[player]사실 당신한텐 빨간색이 어울리긴 해, 그 건방진 느낌이 찰떡이거든.
[쿠츠지]내가 좀 멋지긴 하지. 다른 건 없어?
[player]……됐다, 가자고.
빨간 헬멧을 쓴 나는 쿠츠지의 뒤에 앉았다. 쿠츠지가 몰고 온 건 커스텀된 '타이거 렉스'라는 모델이었다. 개인적으론 동사의 '드래곤 렉스' 모델이 더 마음에 들지만 말이다. 이 모델들은 수시로 내 캣챗의 타임라인에 뜨는, 어마어마한 가격 괴물들이었다.
이쯤에서 슬슬 내 친구인 나데시코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 할 것 같다. 내가 시중에 출시된 대부분의 바이크들에 대해 이렇게 훤히 알게 된 건 나데시코의 영향이 크니까. 나데시코가 갖고 싶어하는 바이크일수록 내 캣챗에 더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그녀가 갖고 싶어하는 바이크일수록 내 지식의 수준도 깊었다.
그나저나, 이 바이크 정말 대단하다.
마치 산속을 쏜살같이 달리는 호랑이 위에 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심지어 안전벨트도 없이! 그리고 난 튕겨 나가지 않기 위해서 쿠츠지의 겉옷을 필사적으로 쥐어 잡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찌익' 비스무리한 소리가 들릴 때마다 옷이 찢어진 건 아닐까 싶어 깜짝 놀라곤 했다.
빽빽한 빌딩 숲에서 바이크를 타는데 어떻게 산악 자전거를 타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수 있는 걸까.
나는 덜컹거림 속에서 나데시코의 뒷자리가 안겨 주는 안정감이 그리워졌다. 그리고 동시에 다시는 쿠츠지의 바이크는 타지 않으리라 맹세했다.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아직도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자, 나는 멀미를 참으며 간신히 쿠츠지에게 물었다.
[player]얼마나 남았어? 언제 도착하는 건데?!
길가에 바이크를 세운 쿠츠지가 고개를 돌리곤 날 바라보았다.
[쿠츠지]응? 형씨가 뒤에서 꽤나 즐기는 것 같길래, 몇 바퀴 더 돌고 가려고 했는데.
[쿠츠지]왜, 벌써 못 견디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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