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옷감에 통기성도 좋다, 속에 받쳐 입는 티셔츠도 그것만 입어도 될 정도로 괜찮았고.
[player]결정했어, 그래도 이거 입을래. 움직이기 편할 것 같아.
[노아](메시지)알아서 해, 오늘 날씨가 그나마 선선한 걸 다행으로 여기라고.
재빨리 옷을 갈아입은 후, 우리는 차를 타고 기도춘으로 향했다.
기도춘에 도착하자, 직원들이 예의를 갖춰 우리를 VIP 휴게실로 안내해 주었다.
[직원]지금은 준비 중이오니, 두 손님분께선 잠시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직원]또한 이번 다과회는 단 한 분만이 참가하실 수 있사오니, 두 분께선 그동안 이에 관해 논의하셔도 좋습니다.
[직원]직원들이 떠나자 노아가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노아](메시지)그럼 가 봐, 난 여기서 기다릴 테니까.
[player]진짜? 직원들이랑 얘기 좀 해 봐야 되는 거 아냐?
[노아](메시지)아니, 지금 여기가 게임 하기에 딱 좋아. 오늘은 카드게임 베타 테스트 오픈날이라서, 랭킹 1위 하러 가야해.
그런 건 과금을 해야하는 거 아니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세심한 나는 또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 내고선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월정액, 시즌 패스, 오픈 기념 패키지, 첫 충전 두 배 등등…… 이 모든 걸 다 사면 나쁘지 않은 효율의 과금일테니 확실히 지금은 방해받지 않는 공간이 필요하기도 할 것이다.
보아하니 남들과 소통하는 일은 내가 맡을 수밖에 없겠군.
나는 곧 돌아온 직원과 함께 VIP 휴게실을 떠났다. 어제 경매를 진행했던 홀을 거쳐 도착한 곳은 어느 한 정원이었다.
직원은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왔다. 나는 직원을 따라 VIP 휴게실을 떠나, 어제 경매가 열렸던 홀을 가로질러 연꽃이 가득 핀 인공 호수를 지난 끝에 호숫가에 있는 삼층 건물의 꼭대기에 다다랐다.
[직원]토죠 쿠로네 님은 바로 안에 계십니다. 저는 이만 가 보겠으니, 부디 즐거운 다과회 되시길 바랍니다.
직원이 떠나고, 난 먼저 문 앞에서 주변을 살펴보았다. 둥그런 입구에는 별도의 문이 없어서 안을 그대로 들여다볼 수 있었다.
멀지 않은 곳, 창가 앞에는 대나무와 새가 그려진 병풍이 있었고, 그 뒤에는 아마도 여성으로 추정되는 실루엣이 언뜻 비쳐졌다. 아마 저 사람이 바로 토죠 쿠로네일 것이라 예상되었다.
내가 어떻게 입을 열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병풍 뒤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토죠 쿠로네]처음 뵙겠사와요. 저는 '기도춘'의 주인, 토죠 쿠로네라고 한답니다.
[player]안녕하세요, PLAYER 입니다.
[토죠 쿠로네]이곳은 기도춘에서 가장 높은 곳이지요, 덕분에 호수의 경치를 한 눈에 담을 수 있답니다.
[토죠 쿠로네]또한 지형 덕분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기도 하지요. 지금 같은 계절에선 보기 드문 선선한 장소이니, 부디 나리께서도 이곳을 마음에 들어 하셨으면 좋겠사와요.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라는 말을 절로 떠오르게 만드는, 부드러운 사투리 억양이 섞여 있는 토죠 쿠로네의 목소리엔 도무지 거절을 할 수 없게끔 만드는 마력이 깃들어 있었다. 하지만 무언가 세상과 동떨어진 듯한 느낌 또한 들어서, 마치 저 하늘의 별처럼 닿지 못할 거리감이 은연중에 느껴졌다.
[player]괜찮습니다, 오히려 경치가 참 아름다워서 보기 좋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토죠 쿠로네]그렇다면 참으로 다행이어요. 이쪽에 나리를 위해 준비해둔 다과가 있으니, 이 또한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네요.
병풍 정면에 놓여진 둥그런 나무 테이블 위에는 정성스레 준비된 간식과 차가 놓여져 있었다, 아마 방금 말한 다과가 이것인것 같다. 테이블 앞의 의자에 앉은 나는, 속으로 무슨 이야기를 나눠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때 병풍 뒤에서 하얀 털뭉치가 가벼운 울음소리와 함께 눈앞의 테이블 위로 뛰어들더니 분홍색 혓바닥을 내밀곤 찻잔 속의 차를 핥아 마시는 게 아닌가.
그 털뭉치가 고개를 들어 날 바라볼 때가 되어서야, 나는 저 자그마한 게 실은 눈처럼 하얀 여우라는 사실을 알아챌 수 있었다. 바깥의 날씨를 보고, 다시 눈앞의 생물을 본 나는 조금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털갈이를 하고도 남았을 계절일 텐데, 털이 이토록…… 하얗고 복실복실할 수가. 마법이 아니라면 분명 뭔가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이겠지. 물론 이한시의 어떤 동물들은 털갈이를 하지 않는다, 라는 가능성 또한 없지는 않겠지만.
토죠 쿠로네는 내게 사과를 하며 조용한 목소리로 여우의 이름을 불렀다. 덕분에 나도 이 귀여운 생물의 이름이 '모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은근히 어울리는 이름이다.
하지만 모찌는 나름의 고집이 있는지, 눈앞의 과자 하나를 물고선 그대로 창가를 통해 도망쳐 버렸다.
[토죠 쿠로네]그…… 죄송합니다. 혹시, 다른 일을 먼저 처리해도 괜찮을지요?
[player]무슨 일인가요?
[토죠 쿠로네]모찌는 아직 젖을 뗀 지 얼마 안 된 아이인지라 데리고 나올 심산은 아니었습니다만, 오늘은 하루종일 제게 달라붙길래 어쩔 수 없이……
[토죠 쿠로네]이렇게 혼자 도망쳐 버렸으니, 빨리 찾아내지 않으면 큰일이 날 수도 있겠어요. 기도춘에는 손님분들도 많은 데다가, 별관에는 경비용 사냥개도 있어서 위험하기에.
토죠 쿠로네의 말에선 조급함이 잔뜩 느껴졌다. 그렇게 말을 하고선 연신 내게 폐를 끼쳐 죄송하다며 사과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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