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지금 의상을 입고 나온 게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모찌의 그 짤막한 다리로는 아직 멀리 못 갔을 테니, 여기에 앉아서 기다리느니 차라리 내려가서 토죠 쿠로네를 돕는 편이 더 나아보였다.
[player]제가 가죠, 아마 아직 멀리는 못 갔을 겁니다.
[토죠 쿠로네]하지만…… 나리께선 제가 초대한 손님인걸요. 이런 일을 부탁드리기엔 예의에 어긋나니, 직원을 불러서 해결하도록 할게요.
[player]괜찮습니다, 그럼 직원도 같이 부르도록 하죠. 전 먼저 내려가서 모찌가 아직 근처에 있나 찾아보겠습니다.
[토죠 쿠로네]으…… 저도 걱정이 되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으니, 그럼 실례를 무릅쓰더라도 부디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래로 내려가던 도중 직원 몇몇과 마주쳤다, 아마 토죠 쿠로네가 여우를 찾아달라고 부른 사람이겠지.
[직원]손님분께선 이쪽의 구조에 밝지 않으니, 괜찮으시다면 가까운 곳을 부탁드리겠습니다. 먼 곳은 저희가 맡도록 하죠.
[player]그러죠.
건물 주변엔 정성스레 가꿔진 꽃밭이 있었고, 여기저기에 과일이 열린 덤불도 있었다. 이런 곳에서 새끼 여우를 찾는 건 아무래도 쉽지 않을 것 같다. 대충 아무 덤불 속에나 숨어도 발견하기 어려울 테니.
하지만 다행인 점은, 방금 물고 간 과자 부스러기가 길에 잔뜩 떨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이를 따라가니, 꽃밭 가운데서 자그마한 빈 터를 발견할 수 있다.
이어서 가까이 가 보니 역시 모찌가 있었다. 모찌는 부스러기를 사방에 흘린 채로 과자를 먹어치우고선, 자신의 꼬리를 잡으러 빙빙 돌며 혼자 놀고 있었다.
나를 본 모찌는 조금 놀란 듯했지만 숨지는 않았다. 대신, 잘못을 저지른 꼬마아이처럼 조심스러운 눈빛으로 날 올려다 볼 뿐이었다.
그리고 덤불을 건너 모찌를 안아 들려 하던 그 순간, 멀지 않은 곳에서 누군가가 지나가며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 남녀 한 쌍으로 보였는데, 거리가 조금 있어서 이야기의 내용은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고개를 들어 바라보자 이야기를 나누던 여성도 마침 방향을 꺾어 내 쪽을 향하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내가 여기에 오게 된 원인인 힐리였다.
힐리의 옆에 선 사람은 모자에 마스크, 선글라스까지 끼고 있어서 얼굴을 전혀 알아볼 수 없었지만, 힐리의 표정으로 보아 대화에 있어 서로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힐리는 빠른 걸음으로 먼저 떠나갔다. 그리고 그녀가 떠나자, 그 남자 또한 내가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힐끗 주더니 이내 따라서 떠났다.
난 딱히 특별한 부분은 없는 저 인상착의를 기억해 두곤, 모찌를 안고선 토죠 쿠로네가 있는 3층으로 다시 돌아갔다.
나와 모찌를 본 토죠 쿠로네는 예의 바르게 감사를 전한 뒤, 엄한 목소리로 모찌를 병풍 뒤로 불러들였다. 하지만 그 냉담한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저 장난꾸러기 여우가 걱정이 되어선, 귀를 쫑긋 세우곤 저편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집중하였다.
하지만 그녀가 모찌를 꾸짖는 목소리는, 방금 상상했던 그런 지위가 높은 사람이 내뱉는 듯한 엄하디 엄한 질책이 아니라, 따뜻한 애정과 관심이 깃든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토죠 쿠로네의 이러한 모습은, 내가 품고 있던 그녀에 대한 첫인상을 바꿔 주었다.
유일하게 아쉬웠던 점은, 내 테이블의 다과가 새 걸로 교체되었다는 것이다. 비록 '기도춘'에서 내온 다과는 모두 훌륭하겠지만, 아무래도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고 새 과자는 아무래도 모찌가 물어간 것보단 좀 못해 보였다, 그냥 그때 좀 더 빨리 먹어 치울걸.
역시 머뭇거리면 놓치기 쉬운 법이다.
그 뒤로도 난 토죠 쿠로네와 함께 계속해서 마작에 관한 얘기를 나누며, 그녀가 마작에 대해 품은 깊은 식견에 감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과회가 끝나고, 슬슬 떠날 준비를 하던 와중 직원이 내게 다가와 고급스럽게 포장된 과자 박스를 건네 주었다.
[토죠 쿠로네]사실, 방금 준비했던 다과 중에는 굉장히 섬세한 손길을 거쳐야만 만들어지는 과자가 있었답니다. 평소엔 귀빈들을 모실 때에만 준비해두는 기도춘의 명물, '백화소'이죠.
[토죠 쿠로네]그런데 저희 아이가 사고를 쳐 버린 탓에, 여분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평범한 과자를 내오게 되었어요.
[player]아까 먹었던 것도 맛있던 걸요.
[토죠 쿠로네]후훗,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나리께서 부디 기도춘의 명물을 맛보아 주셨으면 하는 마음에 담소를 나누는 시간을 틈타 셰프에게 새로 만들어 달라 부탁했사오니, 부디 개의치 말고 받아 주셨으면 해요.
[토죠 쿠로네]저는…… 오늘이 나리에게 불쾌했던 경험이 아닌, 즐거운 추억으로 남길 바란답니다.
[player]불쾌하다뇨, 정말 즐거운 하루였어요. 모찌도 참 귀여웠고, 상상했던 것과 다른 토죠 씨의 다른 모습도 보게 되었고요.
[토죠 쿠로네]다른 모습인가요…… 후훗. 그리 말씀하신다면, 기회가 될 때에 부디 '동풍' 마작장에서 저와 함께 마작을 두도록 하시지요.
[player]기회가 있다면 반드시 가도록 할게요.
기도춘을 나서자, 노아가 이미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Chaque Jour'로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었는데, 그녀는 마치 바쁜 꿀벌처럼 내 주위를 돌며 이것저것 무언가를 하기 시작했다.
먼저 날 소파에 앉힌 다음, 정면에 있는 테이블에 휴대폰 거치대를 놓고선 휴대폰의 위치와 각도를 조정해 내 얼굴을 비추었다.
이어서 모든 준비가 끝나자 노아는 날 향해 엄지를 척 들어올렸다. 그러자, 휴대폰 화면에 익숙하면서도 건방진 얼굴이 떠올랐다.
[쿠츠지]원래 이쯤이면 집으로 보내 줘야 했을 시간이지만, 형씨의 옷에 달아뒀던 카메라가 사라진 탓에 직접 보고를 해 줘야겠어.
[player]카메라는 또 언제 달아 둔 거야?!
그가 눈짓으로 내 옆의 노아를 가리키자, 노아는 손을 들곤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아, 토죠 쿠로네를 만나기 전에도 딱 이렇게 두드렸었지, 그때 달았었구나.
이어서 뭐라 말을 하려고 입을 달싹거리다가 포기하기를 수차례, 하지만 슬슬 '효'의 작업 스타일에 익숙해진 난 그냥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한숨을 쉰 나는 노아와 헤어진 뒤부터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모두 얘기했다. 꽃밭에서 힐리를 만난 부분까지 포함해서.
의외였던 건, 평소엔 쓸데없이 말이 많았던 쿠츠지가 이번엔 진지하게 내 말을 경청했다는 것이다. 그는 내가 거의 삼십 분가량 얘기를 이어가는 와중에도 단 한 번도 말을 끊지 않았고, 그저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가끔 눈썹을 찌푸리기만 할 뿐이라 도리어 내가 더 어색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때, 쿠츠지에게서 연락이 한 통 왔다.
[쿠츠지](메시지)오늘 형씨의 활약, 아주 좋았어. 며칠 뒤에 거래를 마무리할 수 있도록 데리러 가지.
솔직히 말해, 저 인간이 대체 여기서 어떤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는지는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그 전설 속의 사귀인에 관해선 알아갈수록 더욱 많은 수수께끼들이 나올 뿐이었는데, 게다가 그 수수께끼들끼리 서로 상충되고 합쳐지다가 또다시 새로운 수수께끼가 만들어지는 꼴이었다.
어쩌면 언젠간 사건의 진상을 알 수 있는 날이 오겠지, 라고 생각하며 나는 서서히 잠에 들었다.
categoryStory:
en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