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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일 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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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yer]분장실 일을 도울게요.
무대 작업이 더 재밌을 것 같긴 했지만,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오히려 방해만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니 그냥 좀 더 확실한 쪽으로 가자.
[영감님]좋아, 시릴라는 어때?
[시릴라]좋아요. 분장실은 바로 앞이니까, 제가 안내할게요.
시릴라는 복도 끝에 있는 분장실로 날 안내하며 몇 가지를 당부한 후, 동물들과 공연 준비를 해야 한다면서 먼저 떠났다. 그리고 난 그녀의 당부대로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player]……공간이 별로 크지 않아서 분리수거만 빼면 금방 끝날 것 같은데.
바닥 청소를 마치고, 물수건으로 배우들의 화장대를 닦기 시작했다. 가장 바깥쪽 화장대에는 색종이와 끈이 널부러져 있었고, 그 위에는 포커와 작은 칼 같은 도구들이 있었다.
[player]이건 라이언의 테이블이구나. 책도 있네. 마술 관련 책인가…… 음……
<누님의 정확한 사용법>…… 비록 '정확한 사용법'이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왠지 모르게 나의 직감이 더 이상 깊게 들어가지 말라며 외치고 있었다.
[player]잘 놔두자…… 색종이랑 끈들은 버려도 되겠지, 물건들을 잘 놔두고…… 오케이, 다음.
왼쪽에 있는 테이블에는 동물용 통조림과 흑표범용 털관리 도구들이 놓여 있었다. 시릴라의 테이블이었다. 그리고 물건들 밑에는 너덜너덜해진 책이 한 권 놓여 있었는데, 표지엔 <인간과의 정확한 교류 방식>이라는 제목이 쓰여 있었다.
[player]……동물과의 정확한 교류 방식이 맞는 거 아냐? 조련사의 연구란…… 알 수가 없네.
사라의 테이블은 시릴라의 테이블 옆에 붙어 있었는데, 화장품들이 거울 앞에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그냥 먼지만 닦아주면 될 정도였지만, 아쉽게도 책은 없어서 사라가 평소에 무엇을 보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 없었다.
다른 화장대는 사용하는 사람이 없었는지 먼지만 쌓여 있었다. 예외가 있다면, 눈에 띄는 피에로 가면이 놓여있었다.
[player]Soul에 피에로가 있었나? 왜 못 봤지?
[시릴라]예전엔 있었죠.
[player]우왓! 어, 언제 돌아왔어요?
[시릴라]방금요.
[player]발소리가 안 들려서 깜짝 놀랐어요…… 근데, 주인이 없는 거면 이 가면은 왜 계속 남겨둔 건가요?
[시릴라]사라는 그 사람이 가면을 가지러 올 수도 있으니까 그냥 놔두라고 했어요. 하지만 배신자의 물건은 언제 봐도 기분 나쁘네요.
[player]배신자?
[시릴라]다 지난 일이에요, 사라가 기분 좋으면 당신한테 얘기해 주겠죠.
[시릴라]어쨌든 싫은 건 싫은 거지만, 피에로가 나간 건 꽤나 골치 아파요.
[player]무슨 문제라도?
[시릴라]피에로는 극단에서 꽤 인기 있는 배우였는데, 떠날 때 배우 몇 명이랑 관객들까지 끌고 가 버리는 바람에 지금은 모두가 그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서 더 노력할 수밖에 없게 된 상황이에요……
시릴라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들어 벽에 붙어 있는 팜플렛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도 시릴라를 따라서 팜플렛으로 시선을 옮겼다.
[player]확실히 몇 명만으로 공연 프로그램을 모두 채웠네요. 사라가 등장하는 프로그램이 꽤 많네요?
[시릴라]마술 공연은 도구가 많이 필요하고, 동물들은 체력에 한계가 있어서 나랑 라이언은 장시간 공연에 잘 맞지 않거든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각자 어려운 점이 있죠.
[player]그래서…… 사라가 스스로 그 빈틈을 메꾸겠다고 한 건가요?
[시릴라]우리도 말려 봤지만, 이건 단장의 책임이라면서 말을 안 들어요…… 사라를 설득할 사람이 있으면 좋겠는데.
단장으로서의 책임감인가…… 내 기억이 맞다면 오늘은 사라의 생일인데, 사라는 이런 날마저 일에 시달려야 하는 걸까.
[player]……시릴라. 여긴 거의 정리 끝났는데, 혹시 제가 더 도와줄 일이 있을까요? 오늘은 사라의 생일이라, 오늘만큼이라도 짐을 좀 덜 수 있도록 최대한 도와주고 싶어요.
[시릴라]이미 많이 도와주신 거예요. 다른 거라면…… 무대에 올라가 달라고 할 수도 없으니.
[시릴라]전 이만 무대로 가 볼 테니까, 다 끝났으면 좀 쉬세요…… 고마워요.
시릴라가 떠난 뒤, 난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하자'라는 마음가짐으로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테이블들도 마저 닦아냈다. 이제 마지막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옷들을 옆에 있는 의상실로 가져다 놓는 것이다.
의상실
[player]이건, 피에로의 옷인가?
의상실 입구 좌측 코너엔 흰색과 붉은색이 반으로 나뉘어져 있는 옷이 우두커니 걸려 있었다. 그리고 옷 아래엔 익살맞게 생긴 앞코가 뾰족한 신발도 보였다.
[player]장갑도 아직 주머니에 들어있고, 방금 그 화장대 위엔 가면도 있었지……
비록 시실라가 "무대에 올라가 달라고 할 수도 없으니"……라고 말하긴 했지만, 눈앞에 피에로 장비가 이렇게 완벽히 준비된 상태에서 저렇게 말하는 건 진심이 아닐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동영상을 보다가 마침 피에로의 공연을 본 적이 있었다. 물론 갑자기 무대에 올라간다고 해서 특별한 걸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안 하지만, 우스꽝스럽게 간단한 잡기술을 늘어놓는 정도라면 아마 가능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