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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색깔이 조합된 밝은색 옷을 고른다

이 밝은 색의 옷이 가장 시선을 잡아두기 좋을 것 같다. 보는 순간 눈앞이 화사해지는 기분이다. 옷을 갈아입고 탈의실에서 나오자, 노아가 다가와서 날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무언가를 고민하듯 귀여운 눈썹을 찌푸리길 반복했다. 그녀는 곧 휴대폰에 무언가를 톡톡 입력하곤 옆에 있던 점원에게 건네며 눈짓했다. 아마 무언가를 지시한 듯, 직원이 어딘가로 떠났다가 돌아왔을 때에는 손에 반투명한 실크 몇 점과 도구함이 들려 있었다. 내 등을 톡톡 두드리곤 움직이지 말고 서 있으라는 뜻을 전한 노아는, 이어서 도구함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내 옷자락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야에 닿지 않아 구체적으로 무엇을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마지막에 노아가 내 옷깃을 잡고 주름을 털어줄 때가 되어서야 옷자락에 리본으로 만든 검푸른빛 무늬가 추가된 걸 눈치챘다. 다소 추상적인 디자인의 연잎 무늬가 이 옷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었다. 노아애초에 기도춘은 끊임없이 사건이 일어나는 곳이니까, 너무 화려하게 입는 것도 좋지 않아. 노아게다가 만나는 게 토죠 쿠로네라면, 조금 더 진중하게 입는 편이 좋겠지. 그래서 내가 조금 고쳐봤어. [player]대단하네! 역시 노아야. 노아는 내 칭찬을 듣고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으나, 가게에서 나와 차에 앉은 뒤에야 메시지 하나를 받을 수 있었다. 노아어머니가 화가셨어, 그러니까 이쯤이야 나한텐 아무것도 아니야. 방금의 솜씨를 보아하니 노아는 어머니의 재능을 물려받은 것이 분명한데, 어째서 그쪽으로 가지 않고 정보상인 일에 뛰어들게 된 것인지 조금 궁금증이 생겼다. 하지만 그녀가 게임을 켜며 대화를 멈춰 버리자, 난 더 이상 물을 수가 없었다. 기도춘에 도착하자, 직원들이 예의를 갖춰 우리를 VIP 휴게실로 안내해 주었다. [직원]지금은 준비 중이오니, 두 손님분께선 잠시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직원]또한 이번 다과회는 단 한 분만이 참가하실 수 있사오니, 두 분께선 그동안 이에 관해 논의하셔도 좋습니다. [직원]직원들이 떠나자 노아가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노아그럼 가 봐, 난 여기서 기다릴 테니까. [player]진짜? 직원들이랑 얘기 좀 해 봐야 되는 거 아냐? 노아아니, 지금 여기가 게임 하기에 딱 좋아. 오늘은 카드게임 베타 테스트 오픈날이라서, 랭킹 1위 하러 가야해. 그런 건 과금을 해야하는 거 아니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세심한 나는 또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 내고선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월정액, 시즌 패스, 오픈 기념 패키지, 첫 충전 두 배 등등…… 이 모든 걸 다 사면 나쁘지 않은 효율의 과금일테니 확실히 지금은 방해받지 않는 공간이 필요하기도 할 것이다. 보아하니 남들과 소통하는 일은 내가 맡을 수밖에 없겠군. 나는 곧 돌아온 직원과 함께 VIP 휴게실을 떠났다. 어제 경매를 진행했던 홀을 거쳐 도착한 곳은 어느 한 정원이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기도춘은 참으로 큰 곳이란 사실이었다. 거대한 인공 호수를 끼고 있는 정원을 바라보자, 슬슬 입장 티켓의 가격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직원의 안내를 따라 호수 가운데에 위치한 정자에 도착하자, 정중앙의 대나무와 새가 그려진 병풍 뒤에서 누군가의 실루엣이 보였다. 언뜻 비치는 실루엣을 보니, 저 사람이 바로 토죠 쿠로네일것이라 예상할 수 있었다. 직원은 내가 도착했다고 알린 뒤 그대로 자리를 떠나 버렸고, 홀로 남은 나는 순간 어떻게 말문을 열어야 할지 막막해졌다. 병풍 뒤에서는 내 난처함을 눈치챈 듯, 가벼운 웃음소리가 들려오더니 먼저 말을 걸어왔다. [토죠 쿠로네]오늘 나리께서 생화처럼 아름다운 옷을 입고 왔다고 전해 들은지라, 꽃구경을 하고 싶어진 바람에 멋대로 다과회의 장소를 이 정자로 정했사와요, 부디 개의치 마시길.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라는 말을 절로 떠오르게 만드는 목소리. 부드러운 사투리의 억양이 섞여 있는 그녀의 말에는 도무지 거절을 할 수 없게끔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하지만 무언가 세상과 동떨어진 듯한 느낌 또한 들어서, 마치 저 하늘의 별처럼 닿지 못할 거리감이 은연중에 느껴졌다. [player]괜찮습니다, 오히려 경치가 참 아름다워서 보기 좋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토죠 쿠로네]그렇다면 참으로 다행이어요. 이쪽에 나리를 위해 준비해둔 다과가 있으니, 이 또한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네요. 병풍 정면에 놓여진 돌로 된 찻상 위에는 정성스레 준비된 간식과 차가 놓여 있었다. 아마 방금 말한 다과가 저것이겠지. 이어서 찻상 앞의 의자에 앉은 나는, 속으로 무슨 이야기를 나눠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토죠 쿠로네]이미 저에 대해선 들으셨겠지만, 그래도 정식으로 나리께 소개를 드리는 편이 도리에 맞겠지요. 저는 '기도춘'의 주인, 토죠 쿠로네라고 한답니다. 오늘 나리께 다과를 대접해 드릴 수 있어서 영광이어요. [player]PLAYER 입니다, 토죠 씨와 다과회를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토죠 쿠로네]후훗, 나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니 마음이 편안해지네요. 오늘의 다과회도 마찬가지로 즐거우리라는 예감이 들어요. [토죠 쿠로네]기도춘의 정원은, 나리께선 아마도 처음 와 보시겠지요. [player]그렇네요. [토죠 쿠로네]이 호수의 연꽃들은 모두 기도춘에서 직접 개량한 품종이랍니다. 대략 스무 종 가량이 있지만, 아쉽게도 꽃 피는 시기가 각각 다른지라 몇몇은 이미 시들었네요. 그녀의 말을 따라 호수를 바라보자, 확실히 이미 연밥이 달린 연잎들이 꽤 많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일부는 마침 알맞게 아름다운 꽃을 피워 내었는데, 호수에 불어오는 부드러운 바람이 맑은 향기를 실어오자 마음마저도 부드럽게 잔잔해지는 기분이었다. 시선이 호수 가운데의 석가산에 닿았을 때, 순간 낯익은 문양이 눈에 들어왔다. '御(어)' 자, 처음 '효'의 마작장에서 마작을 둘 때 벽에 걸려 있던 여덟 여인의 그림에서도 똑같은 문양을 본 기억이 떠올랐다. [토죠 쿠로네]혹시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 제가 같이 알아도 괜찮을지요? 토죠 쿠로네의 말을 듣자 잊고 있던 사실이 떠올랐다. 나는 단순히 경치 구경이나 하러 온 게 아니라, 임무가 있어서 온 것이었다. 그러나, 그 질문을 듣자 정말로 무언가가 떠오르긴 했다. 저번에 새턴과 수다를 떨 때 그가 이런 얘기를 했었다. 보통 마작 대회의 우승자는 단 한 명으로 정해질 텐데, 왜 저번 대회에선 막상막하의 실력을 지닌 사귀인이 나타났던 걸까? 이런 문제라면 아마 당사자에게 묻는 편이 가장 좋겠지. 잠시 속으로 말을 고른 뒤 질문을 던지자, 그녀는 잠깐 침묵하더니 대답했다. [토죠 쿠로네]사실 대회에 관한 것들은…… 기억이 상당히 모호한지라, 대략적인 인상으로밖에 남아 있지 않사와요. [토죠 쿠로네]하지만, 그래도 나리의 질문에 대해선 어느 정도 대답이 가능할 것 같네요. 당시 대회의 규칙에 따라, 저와 다른 분들은 네 번의 반장전을 치른 뒤 각자 한 번씩 승리했었지요. [토죠 쿠로네]하지만 마지막에 결산을 해 보아도 결국 넷 모두가 원점인 탓에 우열을 가릴 수가 없었으니, 우승자 또한 없었답니다. [토죠 쿠로네]주최 측에선 저와 다른 분들의 실력을 감안하여, 우승자는 없더라도 따로 사귀인이라는 칭호를 마련해 주었지요. 또한 저희는 '동풍', '남풍', '서풍'과 '북풍' 네 마작장을 계승할 권리를 얻게 되었구요. 여기까지 말한 그녀는 살포시 웃더니, 특유의 부드러운 말투로 살짝 원망하듯 말했다. [토죠 쿠로네]'동풍' 마작장을 계승하게 되었을 때, 전 그곳이 그렇게나 낡고 버려진 곳일 줄은 상상도 못했답니다. [토죠 쿠로네]그곳을 지금처럼 부흥시키고 제자들을 거두기까지, 얼마나 큰 수고가 들었는지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