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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오리에게 고양이 소리를 내게 한다

[미카미 치오리]……너 미쳤어? 요구 사항을 들은 치오리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잽싸게 전화기의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곧 큰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단단히 화가 난 리우가 나타났다. [player]……어? 우아앗! 아파! 나에게 교훈을 준 리우는 치오리의 명령을 받은 뒤 방을 떠났다. [미카미 치오리]딱 한 번만 더 기회를 줄게. 그러니까 이번에는 잘 생각해서 말하도록 해. 난 아직까지 두근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은 채로 조심히 손을 들었다. [player]미카미 치오리 씨, 커피 한 잔 내려 줘. 내 소원을 들은 치오리는 불쾌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player]에이, 딱히 무리한 요구는 아니잖아? 전에 레이나의 가게에서 일한 적도 있었고 말이야. [미카미 치오리]……흥, 이번만 해 주는 거야. 휴우, 치오리가 아래 층으로 내려가는 걸 본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게임의 규칙이란 건 참 유용하기도 하다. 잠시 뒤, 미카미 치오리의 집 주방 [미카미 치오리]만들어 왔어. 치오리는 약속한 대로 직접 커피를 만들어 왔다. 정교한 꽃 장식과 완벽한 세팅, 코를 찌르는 기분 좋은 향기까지…… 하지만 기분이 좋으면서도 약간의 불안감이 가시지 않았다. [player]고생했어. 그럼 사양 않고 잘 마실게. 그러나 커피를 한 모금 마시자, 무방비한 내 목구멍 속으로 커피의 것이 아닌 매운 맛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player]푸웁── 콜록…… 콜록…… 왜 매운맛이 느껴지는 거야?! [미카미 치오리]헤헤, 치오리한테 그냥 커피나 타오라고 했지, 무슨 맛이라고까지는 말 안 했잖아? 커피 안에 고춧가루를 타면 안 된다는 룰도 없었고 말이야. ……매운맛에 정신을 못 차리고 눈물콧물 다 빼고 있던 그때, 치오리는 그런 내 모습을 지켜보며 핸드폰을 꺼내곤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이게 바로 룰의 헛점을 이용하는 게 특기인 소녀란 말인가! 으으, 무섭다 무서워!! 나를 보며 고개를 젓던 치오리는 주방에서 커피를 가져왔다. 이번엔 아까 전과는 다르게, 커피 위에 얼음이 떠 있었다. [미카미 치오리]아직 게임을 계속해야 하니까 이걸 마시도록 해. 난 건네준 커피에 무슨 수작을 부려놓았는지 아닌지 확인할 겨를도 없이 바로 단숨에 들이켰다. 차가운 커피가 목구멍에 들어오자, 입 안에서 순식간에 매운맛이 사라졌다…… [미카미 치오리]흥, 교훈 하나 배웠다고 생각해. 다음에 또 이런 지나친 요구를 한다면 오늘처럼 쉽게 넘어가지 않을 테니까 말이야. 알겠어? 나는 미친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래도 이번에는 정상적인 커피인 걸 보니, 그래도 나를 신경 쓰고 있기는 한 것 같다. 잠시 동안의 '벌인지 상인지 모르겠는 소원 들어주기 시간'이 끝나고, 우린 다시 서재로 돌아왔다. [미카미 치오리]그럼 계속 게임을 진행해 보자. 이제부터 본실력을 발휘할 테니까 각오하도록 해. [player]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우리가 주사위를 던지자, 게임판 위의 말들이 계속해서 격렬한 싸움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게임이 진행됨에 따라, 운보다는 자원의 배치, 거래, 비지니스 찬스에 대한 안목이 점점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보유 중인 재산이 모두 치오리에게 삼켜져 버렸다는 사실에, 그만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맞은편에서 전략을 세우며 마치 마작장에서처럼 '마왕의 기운'을 뿜어내고 있는 치오리를 본 나는, 치오리가 모노폴리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 과소평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게임은 막바지에 향해 나아갔다. 나는 전력을 다해 자원을 빼앗을 전략을 짜며 역전의 기회를 노렸지만, 승리의 저울은 계속해서 치오리를 향해 기울어질 뿐이었다. 주사위를 던지자 또다시 치오리의 건물칸에 들어가게 된 나는, 임대료를 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코인을 보며 백기를 들고 말았다. [player]내가 졌어, 역시 치오리는 대단하네. 나랑은 완전 다른 '모노폴리'를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미카미 치오리]흥, 당연한 말이지. 이게 바로 이 치오리님을 얕본 대가야. 치오리는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책장의 한 귀퉁이를 눌렀다. 그리고 다음 순간, '위잉~'하는 기계음과 함께 평범해 보이던 책장이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하며 숨겨진 공간이 드러났다. 나는 커진 눈과 함께 말문이 막혔다. 책장 뒤 숨겨진 공간에는 각종의 보드게임과 크고 작은 게임 도구들이 놓여져 있었다…… 이곳은 보드게임 플레이어라면 천국이나 마찬가지인 수집실이었다! [미카미 치오리]어때? 난 평범한 다른 플레이어들이랑은 다르다구. 날 이기고 싶다면 먼저 여기 있는 보드게임을 전부 플레이하고나서 다시 도전하도록 해! 애초에 우리 둘은 레벨이 틀리니까 말이야. [미카미 치오리]! 치오리는 그냥 보드게임 카페에서 한 번씩 노는 그런 정도가 아니라 평소에도 보드게임에 빠져 지내는 전문가 수준이었던 거야? [player]하하핫! 대단한걸! 잠깐의 충격 이후, 나는 패배를 완전히 받아들였다. 치오리는 항상 나에게 예상 외의 놀라움을 안겨 준다. [미카미 치오리]……뭐야? 하지만 치오리는 내 반응이 시원찮았는지, 날 이상하다는 눈으로 쳐다봤다. [player]왜? [미카미 치오리]너, 정말 이상한 녀석이네. 게임에서 진 데다 이 정도로 차이를 보여 줬으면, 막 슬퍼하고 기분 나쁘고 분해야 하는 거 아냐? 꼭…… 꼭…… 순간 내 머릿속으로 치오리가 하고자 하는 말이 떠올랐다. "꼭 마작이나 보드게임에서 나한테 호되게 당하고선, 엉엉 울면서 뛰쳐나가는 사람처럼 말이야." 나는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player]지긴 했지만, 치오리랑 잊지 못할 오후를 보낸 것 자체가 나한텐 값진 경험이었는데 어떻게 안 기쁠 수 있겠어? 노을빛이 서재를 비추었다. 미처 정리하지 못한 보드판이 널브러져 있는 테이블 위로 바람이 불자, 그 위에 말 중 하나가 넘어져 질서정연했던 보드판 위의 세계에 자그마한 떨림을 만들어 내었다. 치오리는 생각에 잠긴 듯 눈썹을 찌푸리곤, 고개를 숙인 채 중얼거리더니 다시 날 향해 고개를 돌렸다. [미카미 치오리]내일은 그냥 안 가도 돼. 훈련은 취소야. [player]어? 취소라니? 왜? [미카미 치오리]……바보. 오후 내내 이 게임을 하느라 시간을 보냈으니까, 훈련 시간이 부족할 거 아냐. 이 상태로 내일 도전하러 가 봤자 그 연인들한테 지기 밖에 더하겠어? 그리고…… [미카미 치오리]그리고 생각해 봤는데 말이야. 치오리랑 PLAYER, 우리 둘은 승리에 대한 관점이 너무나도 달라. 결국 2인 협동 게임인데, 치오리 혼자서 이겼다고 생각해 봐야 결국 가짜 승리일 뿐이잖아. [player]그렇다는 건, 치오리가 내 감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라고 이해해도 될까? [미카미 치오리]그, 그런 거 아니거든! 팀원이라서 신경 쓰는 거거든! [player]그래, 그렇겠지. 나는 기꺼이 맞장구를 쳐 주었다. 어쨌든 치오리가 부끄러워서 빨개진 얼굴을 볼 수 있었으니, 어떤 대답을 하든 간에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난 당연히 용서해 주기로 했다. [미카미 치오리]……둘이서 이기려면 진짜 훈련을 할 필요가 있어. [player]하하, 그러니까 게임에서 이기면서 동시에 호흡 면에서도 만점이어야 한단 말이지? 이거 원래 목표보다 더 어려워진 것 같은데? [미카미 치오리]그러니까 오늘부터 게으름 피울 생각은 하지도 마! [player]알겠어.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자. 치오리와 약속을 한 후, 보드게임 수집실을 자세히 살펴보던 나는 치오리에게 질문을 던졌다. [player]치오리는 언제부터 보드게임을 시작한 거야? [미카미 치오리]아주 어렸을 때부터 했지. 근데, 마작을 시작한 이후론 보드게임을 하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긴 했어. [player]왜 보드게임을 좋아하는 거야? [미카미 치오리]척 보면 몰라? 룰을 이용해서 상대방을 괴롭힐 수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진진하지 않아? [player]뭐? [미카미 치오리]괜찮아. 이제부터 같이 호흡을 맞추면서 그게 어떤 재미인지 알아볼 시간은 많을 테니까 말이야. ……치오리의 얼굴에 떠오른 달콤한 미소를 보자, 내 마음 속에는 기대감과 두려움이 동시에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