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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덱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선택지를 들이민다고 내가 정답을 맞추는 걸 막을 순 없을 것이다. 치오리가 가지고 다니는 가방의 이름은, 당연히── [player]──인·덱·스! 두 사람의 표정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정답을 맞춘 모양이다. [player]후후, 치오리가 항상 입에 달고 다니는 그 이름을 내가 어떻게 까먹을 수 있겠어? 벌써 세 문제나 맞췄는데, 슬슬 왜 문제를 내는 건지 설명해 주면 안 될까? [쿠죠 리우]다음 문제! 리우는 나의 말을 무시하며, 계속해서 치오리와 관련된 문제를 냈다. 좋은 소식은, 오늘은 운이 정말로 좋아서 찍었던 뒤에 낸 문제들은 대부분 찍어서 맞췄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쁜 소식은, 승리에 도취한 내가 리우와 치오리에게 거의 '협박' 당하다시피 쫓겨났기에, 점장인 레이나가 들어오는 걸 빤히 보고도 신제품을 맛볼 수 있는 기회가 물 건너 갔다는 것이었다…… 잠시 뒤, 나는 치오리의 집으로 끌려왔다 순백의 창틀 밖으로는 길고 푸르른 나뭇가지들이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고, 실내의 매끄러운 나무 바닥 위에 나뭇잎의 빛 그림자가 얼룩을 남겼다. 방 안 가득 들어선 화려한 책장에는 각종 책으로 가득 차 있었고, 벽에는 명필가의 글이 걸려있었다. 치오리의 서재를 보니, 겉으로 보기엔 귀여운 대저택의 아가씨이지만 공부의 방향은 '귀여움'이라는 표면적인 것을 한참 뛰어넘은 것 같았다. 그리고, 존재감 넘치는 리우의 시선이 소파에 앉아 있던 나의 호기심을 완전히 거두게 만들었다. 방금 치오리는 준비할 게 있다며, 리우에게 날 서재로 데리고 가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알려 주라고 일렀었다. [쿠죠 리우]제가 신청한 특급 메이드 훈련 클래스가 지금 졸업 시험을 앞두고 있지 않았다면, 당신에게 기회가 돌아가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player]……기회라니? [쿠죠 리우]네. 바로 다시는 없을, 치오리 아가씨와 함께 팀이 될 기회를 말이죠! 자세히 설명드리자면, 바로 어제…… [player]우와앗, 회상 씬이 시작되어 버려엇! [쿠죠 리우]말.끊.지.마.세.요. 내가 말을 끊은 탓에 리우의 강철 주먹이 날아왔다. 나는 머리를 문지르며 리우의 말을 계속해서 경청했다. [쿠죠 리우]……어제, 저는 치오리 아가씨와 함께 보드게임 카페에 갔습니다. 그 가게에 새로 들어온 2인 대전 보드게임이 있다고, 한번 해 보고 싶어 하시더군요. 물론 치오리 아가씨의 총명함이라면 그런 보드게임 따윈 승리하는 것이 당연했겠지만, 저희의 상대로 어떤 닭살 커플이 매칭되었고, 그 결과는…… 하루 전날, 보드게임장 [쿠죠 리우]아가씨, 저희가…… 졌습니다. [미카미 치오리]……이런, 거의 다 따라잡았는데! [연인 A]하하하, 그렇게 서운해 할 필요 없어, 꼬맹아. 이 2인 협동 보드게임은 두 사람의 호흡이 얼마나 잘 맞는지를 보는 게임이니까 말이야. 특히나 '감정'의 호흡을 말이야. [연인 A]아직 중학생이지? 옆에 있는 메이드 씨는…… 별다른 경험이 없어 보이고…… 으음, 둘 다 딱히 연애를 해 본 적도, 다른 사람한테 고백받아 본 적도 없어 보이는데, 이럴 수 있다는 것도 정말 대단하네! 안 그래, 자기야? [연인 B]응! 자기 말이 전부 맞아! [미카미 치오리]흥, 좋아하긴 아직 일러. 치오리에게 있어 이건 잠깐의 패배일뿐이니까. 내일모레! 그때까지 하루만 더 연습할 시간을 준다면 너희들을 이겨 보이겠어! [연인 B]하하하, 좋아. 언제든지 기다리고 있을게. [쿠죠 리우]이렇게 된 겁니다. 치오리 아가씨께서 내일 보드게임으로 다시 도전하기로 했는데, 내일 전 메이드 특훈 클래스 시험 때문에 같이 가지 못하게 되어 버렸거든요. 그래서 같이 보드게임을 할 사람을 몰색 중이었습니다. [player]그래서, 아까 카페에서 했던 질문이 팀원을 찾는 과정이었다, 이거지? 솔직히 말해서, 그 문제들은 전부 치오리에 대한 것들이지 딱히 '호흡'이랑은 상관 없어 보이던데? [쿠죠 리우]아, 그 문제들은 운과 함께 아가씨께서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알고 계신지 시험해 본 것입니다. 그래야만 아가씨께서 기분 좋게 같이 게임을 즐길 수 있을 테니까 말이죠. 호흡에 관해서는 아가씨께서 잘 조련하겠다고 하셨습니다. [player]조련…… 알았어. 근데 앞으로 그런 이상한 단어는 쓰지 말아 줄래? [미카미 치오리]준비 끝났어! 대화를 나누던 중, 치오리가 종이 상자를 안고선 서재에 들어왔다. [미카미 치오리]무슨 상황인지는 알겠어? [player]응, 대충 어떤 상황인지는 이해했어. 그런데…… 내가 마음에 걸리던 걸 말하기도 전에, 치오리가 먼저 말을 꺼냈다. [미카미 치오리]좋아. 리우, 이제 나한테 맡기고 넌 시험 준비를 하러 가도록 해. 이걸로 뛰어난 팀원을 만들어 어제의 복수를 하고 말겠어! [쿠죠 리우]네! 치오리 아가씨를 믿고 있겠습니다! 파이팅! 그럼 전 방으로 돌아가 있을 테니, 필요한 게 있을 때 불러 주시기 바랍니다. [쿠죠 리우]당신도 힘내시고, 내일도 잘 하시길 바라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리우는 경고의 의미로 내게 주먹을 휘둘러 보였다. 나는 연달아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아쉬움 속에서 이별을 했다. 그렇게 서재엔 나와 치오리만이 남게 되었다. 치오리는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빠르게 종이 상자 안에 들어 있던 작은 책자를 건네 주었다. [미카미 치오리]자, 훈련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이걸 봐 두도록 해. 치오리가 내게 건네준 것은 보드게임의 설명서였다. 나는 미처 말하지 못했던 망설임은 거둬들이고, 일단 설명서를 자세히 읽기 시작했다. 이건 '두근두근 지도'라는 보드게임으로, 두 사람이 한 팀을 이루어 복잡한 지형의 보드판을 탐사하며 가장 먼저 지도의 끝에 도착하는 팀이 승리하는 게임이다. 팀워크가 기초가 되어, 전진과 후퇴, 방향과 걸음 수 등은 모두 팀원이 함께 마주하는 카드에 의해 결정된다. 게다가 카드에 적혀 있는 미션들은 플레이어들이 서로 상호 작용을 할 수 있게 디자인되어 있었다. 설명서에 따르면 이 게임은 심리학을 적용한 보드게임으로, 연인 혹은 친구와 호흡이 얼마나 잘 맞는지 시험해 보는 게임이라고 나와 있었다. [player]이런 게임이구나…… 치오리, 우린 좋은 친구긴 하지만 우리의 상대는 그 무엇보다 끈끈한 연인이야. 이기는 건 어렵지 않을까? 설명서를 모두 읽은 나는 줄곧 마음에 걸렸던 사실을 말했지만, 치오리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태도였다. [미카미 치오리]호흡이 잘 맞을수록 이긴다, 누가 그렇게 정했지? [player]그럼 방법이 있는 거야? [미카미 치오리]잘 들어, 한 번만 말할 거니까. 그 어떤 게임이라도, 본질적인 규칙을 이해하기만 한다면 반드시 이길 방법이 있어! 이런 2인 협동 게임은 겉으로 보기엔 두 사람의 호흡이 맞아야 유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행동의 일치성'이 핵심이야. [player]행동의 일치성? [미카미 치오리]맞아, 승리의 열쇠는 상대방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문제를 푸는 사고 방식이 같아야 한다는 점이지! [player]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 이한시의 학생이라면 모두 들어봤을 객관식 문제 찍기 방법 같은 거네. 가장 짧은 문장 혹은 가장 긴 문장을 고를 것. 문장의 길이가 다 비슷하면 3번을 찍을 것. [미카미 치오리]뭐? 학교 수준에서 내는 간단한 문제에 그딴 비결까지 필요하단 말이야? 설마 그 이한시의 학생이란 게 널 말하는 건 아니겠지? [player]그냥 떠도는 말일 뿐이야…… 우리가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미리 풀이법을 정해 두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야. [미카미 치오리]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규칙에 따라 그 '풀이법'을 정한다고 해도, 상황은 네가 방금 말한 것보다 훨씬 복잡하게 돌아갈 거야. 그러니까, 일단 먼저 플레이해 보자. 이 게임엔 엄청나게 많은 테마가 있으니 말이야! [player]음…… [미카미 치오리]뭘 그렇게 멍하니 있는 거야? [player]잠깐 생각 중이야…… 눈앞에 놓인 설명서에 따르자면, 제작자의 의도는 보드게임을 즐기면서 참가자들끼리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치오리의 방법은 그 게임의 목적을 무시하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게 되자, 난 정말 치오리와 함께 이 훈련을 해야 할지 망설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