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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대답한다

나는 의견을 완곡하게 돌려서 전하고 싶었지만, 포스터는 신입생에게 동아리 활동을 어필하는 첫인상이니 그냥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player]솔직히…… 이 위에 그려져 있는 게 뭔지 나는 잘 모르겠어. [니노미야 하나]원피스를 입고 해바라기를 들고 있는 여자아이예요. 여기 봐요, 이건 머리, 이건 해바라기…… [player]아, 아…… 나는 니노미야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간신히 해바라기를 들고 있는 소녀를 그린 것이란 사실을 인식할 수 있었다. 앞치마를 두르고 국자를 들고선 밥을 하는 여자아이가 아니었다…… [니노미야 하나]후우…… 급하게 준비하자니 너무 억지스럽네요. 전 예전부터 이랬어요. 책을 볼 땐 이론은 간단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전에서는 바보가 되어 버리곤 해요. [니노미야 하나]참고서 몇 개 읽었다고 해서 태블릿으로 이런 작업을 하는 건 역시 무리겠죠…… [player]그런 생각이었다면 디자인 하는 친구들에게는 좀 실례일 것 같은데…… 혹시 태블릿 사는 데 얼마 들었어? [니노미야 하나]중고로 산건데, 오늘 밤에 다시 내보내야겠어요. [player]합리적인 선택이야…… 포스터는 일단 내버려 두자. 정말 안된다 싶으면 내가 나중에 아는 만화 작가한테 부탁해 볼게. 비록 귀차니즘이 엄청난 작가이지만…… [player]포스터 외에 원예부를 소개할 만한 책자를 준비해도 좋겠다. 홍보 영상이 있으면 더 좋고. [니노미야 하나]이거 관련해서, 그날 나나랑 여기서 만나기로 했던 것도 홍보용 영상을 찍기 위해서였어요. 이미 찍었는데, 한번 보실래요? [player]당연하지, 어서 보여 줘. 니노미야가 컴퓨터 바탕화면에 있는 영상 파일을 클릭하자, 푸른 하늘과 구름 밑으로 이어진 아사바 고등학교의 대문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아사바 고등학교. 이곳엔 아름다운 아침 햇살이 있고, 따사로운 오후의 햇빛이 있습니다. 니노미야의 나레이션과 함께 화면이 원예부의 정원으로 전환되었다. 햇빛 아래, 바로 물을 먹은 화초들이 활력을 뽐낸다…… 처음엔 아무것도 없는 정원을 보며 혼자라는 생각에 불안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식물들과 함께하며, 매일매일 설레는 변화들을 볼 수 있어요 마지막엔 화면 중앙에 몇 개의 글자가 나타났다. "너희들과 함께할 동아리가 기대돼. 아사바 고등학교 원예부 모집 중." [니노미야 하나]이 홍보 영상, 어때요? [player]괜찮은걸, 틀도 잡혀 있고.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네 모습은 나타나질 않네? [니노미야 하나]찍었는데요. 여기 봐요, 여기 있잖아요…… 니노미야가 몇몇 부분을 짚어 주자, 흙을 다지면서 스쳐 지나가는 손, 물을 뿌리면서 스쳐 지나가는 발목은 보이긴 했지만, 어쨌든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진지하게 영상을 본 건, 전에 심령 영상에서 아주 구석에 숨어 있던 유령을 찾을 때 정도 뿐이었다…… [player]니노미야가 식물이랑 제대로 교감하는 모습을 영상에 담는 편이 홍보 효과로서 더 좋을 것 같은데? [니노미야 하나]나나도 그렇게 말했지만, 원예부를 홍보하는 거니까 역시 앵글을 화초에 집중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성과를 보여 주는 방법이기도 하고. [player]음…… 일리가 있네. [player]그럼 홍보 영상은 정해졌고, 이제 다시 포스터를 그려야겠다. 그리고 신입 부원들을 위한 선물도…… [니노미야 하나]시간이 늦었으니까 우선 남은 일들부터 처리해요. 신입 부원이랑 관련된 건 좀 이따 밥 먹으면서 이야기하죠. [player]그것도 그렇지, 그럼 컴퓨터를 끄고…… 응? 이 재생 목록에 있는 "홍보영상 2"는 뭐지? 다른 것도 찍었어? [니노미야 하나]앗! 그, 그건 안돼요! 니노미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홍보영상 2"를 클릭했다. 그녀는 몸을 숙이고 손이 바쁘게 컴퓨터를 조작했지만 프로그램은 꺼지지 않았다, 그러자 나의 얼굴을 붙잡곤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려 버렸다. [니노미야 하나]고, 고개 돌려요! 이건 쓸데없는 영상일 뿐이에요! [player]니노미야,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지는 게 사람의 본성인 걸 모르나 보네…… 나는 화면을 보기 위해 필사적으로 눈을 돌렸다, "하나쨩 부끄러워하지 마, 자자자, 여기 보고 몇 마디 해 봐." 영상 속에 흰색 원피스를 입은 니노미야가 시라이시 선배에게 떠밀려 카메라 앞에 섰다. 얼굴이 붉어진 그녀는 마이크를 들곤 어물쩍거리며 신입 부원 모집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어디로 갈지 모르는 한쪽 손이 치맛자락을 만지작거린다, 수줍은 그녀의 모습이 꽤나 귀여웠다. [player]그러고 보니, 처음 봤던 홍보 영상에서 몇 번인가 화면의 가장자리로 흰색 천이 지나가는 걸 봤는데, 그때 입은 것도 이 옷이야? [니노미야 하나]나나가 홍보용 영상이니 꼭 교복을 입을 필요는 없다고 해서, 최근에 산 원피스를 가져왔어요…… 하지만 사복을 입고 카메라 앞에 서니까 부자연스러워서, 이건 사용하지 않기로 한 거예요. [니노미야 하나]돼, 됐어요! 다 봤으니 이제 끄자고요…… 풉, 부끄러워서 보여 주기 싫었던 모양이다. 정말 안타깝다, 니노미야는 조금만 꾸미면 이목을 끄는 아이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홍보영상 2"는 새로운 부원 모집에 효과적일 텐데, 본인이 싫다고 하니 어쩔 수 없겠지. [player]하지만 이 영상이 나한테 영감을 줬어, 니노미야가 해바라기를 안고 있는 이 장면, 만약 이걸 사진으로 변환할 수 있다면 바로 인쇄해서 포스터로 사용할 수 있잖아. [니노미야 하나]그건…… 이상하지 않을까요? [player]전혀 이상하지 않아. 너의 귀여움과 홍보 영상 속의 생기 발랄한 화초들까지 더하면 분명 신입 부원을 많이 모집할 수 있을 거야. 잘 됐다! 포스터는 더 이상 고민 안 해도 되겠어. [니노미야 하나]너무 긍정적인 거 아닌가요, 옷을 갈아입었다고 사람들을 끌어모을 수 있다면 제가 투명 인간이 될 일도 없었겠죠…… 근데 신입 부원 모집에 진전이 있었다곤 하지만, 어째 저보다 더 설레하는 것 같네요. [player]신입이 생기면 니노미야 너도 좀 편해질 수 있잖아. 게다가 새로운 친구도 생길 거고, 난 당연히 널 위해 기뻐하는 거지.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