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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혹시 약 먹는 게 싫어?

jyanshi: 
categoryStory: 

에인, 너 설마…… 약 먹는 게 싫은 거야? 약물에 대한 공포심을 갖는 건 당연한 거고, 이에 유난히 격하게 반응하는 이들도 있다. 약물을 사용해야하는 문제가 생기면 계속해서 걱정하게 되고, 이런 스트레스는 에인 같은 건장한 청년이라 할지라도 무의식적으로 도망치게 만든다. 그리고 내가 입 밖으로 말을 꺼낸 순간, 에인이 경악하는 눈빛을 본 나는 확신했다. 내가? 약을 싫어한다고? 네가 발모제 같은 약이나, 의사한테 진찰을 받기 싫어하는 건 단순히 고집스러운 성격 때문이 아니야. 아무리 생각해 봐도, 네 모습은 의사 공포증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어. ……………… 내 말에 정곡이 찔린 듯, 에인은 고개를 숙인 채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나 맑고 명랑했던 여우가 조용히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자 난 마음 한구석이 좀 불편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의사에게 데려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에인의 어깨를 두들기며 위로를 건넸다. 으아아아아, 왜 갑자기 머리를 들고 그래, 사람 놀라게! PLAYER, 내 말을 좀 들어봐. 이 일에 대해서 너한테 할 말이 있어…… 띵동~ 데스크에서 들려오는 기계음이 에인의 말을 끊었다. 병원에 접수한 지 1시간 37분째, 드디어 우리 순서가 되었다. 113번 에인 환자는 피부과 3번 진료실로 오시기 바랍니다. 에인, 네 차례야. 일단 의사한테 진료를 받은 다음에 다시 얘기하도록 하자. 에인의 피부과 진료를 맡은 의사는 오십살 정도 되어 보이는, 무표정한 얼굴을 가진 남자였다. 테이블 위에는 '과장'이라고 적힌 명패가 권위를 더해 주며 믿음직스러움을 뿜어내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점은, 머리가 풍성하고 검다는 점이었다. 언제부터 털이 빠지기 시작했나요? 아마도 일주일 전쯤…… 꼬리 털이…… 빠지기 시작했어요. 털이 빠진 자리에 간지러움이나 통증 같은 이상한 느낌은 없었나요? 털이 빠지기 전에 약이나, 건강 식품, 그러니까 비타민제나 보충제 같은 걸 드신 적은 있나요? 간지럽지도, 아프지도 않아요. 하루 세끼 규칙적으로 꼬박꼬박 잘 챙겨먹는 걸요. 불면증이나, 어지러움, 이명 같은 증상이 있었나요? 일상 생활 중에 허리 통증이나, 수족냉증, 아침에 일어났을 때 무기력증 같은 증상은 느껴졌나요? 아니요, 저는 지금은 건강 그 자체인걸요. 실례지만, 혹시 집안 사람들 중에 탈모현상을 자주 겪으시는 분이 계신가요? ……제발 우리 부모님께서 이 말을 듣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의사의 질문에 대답하느라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지만, 의사의 얼굴빛은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진료 차트에 적힌 의사의 글씨는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분위기로 대충이나마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에인이 엄청 심각한 병에 걸렸나보네…… 현재, 털 빠짐을 일으킬 수 있는 기본적인 원인은 전부 배제되었으니, 환부를 검사해 봐야겠네요. 안쪽 검사실에 누워서 꼬리 부분을 보여 주세요. 그, 그건 필요 없을 것 같은데요. 가뜩이나 거부감이 심한 에인이 망설임 없이 진료를 거부하자, 예상했던 대로 의사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진료실에서 사람 한 명과 여우 한 마리가 대치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가 원만하게 해결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