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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은 무리다, 못 뛰겠어.

이한시에서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 있다. 1호선에서 9호선으로 가는 환승 통로는, "환승 삼대장"이라고 불리우는 장소다. 600미터 길이의 환승 통로는 평소에도 사람들로 가득 차 있기에 어떻게 해도 10분은 걸리는 통로인데, 그런 곳을 6분 30초 내로 도착하라니. 아무래도 간만에 실력 발휘를 좀 해야 할 것 같다. 안전을 위해, 역내에서는 뛰지 마세요. 안전을 위해, 에스컬레이터에서는 핸드폰을 보지 마세요. [player]괜찮아, 아직 이른 시간이라구. 코미케에서 대기줄을 서 봤던 경험에 따르면, 입장하기 가장 편한 시간은 밤 새서 줄을 기다릴 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이 이미 입장한 점심 즈음이니까 말이야. 나는 스스로를 위로하며 9호선을 향해 걸어갔지만, 열차 문은 내가 도착한 바로 그 순간에 닫히며 떠나가고 말았다. 그리고 전광판에는 다음 열차가 5분 후에 도착한다는 글씨만 보일 뿐이었다…… 나는 한숨을 내쉰 뒤, 핸드폰을 꺼내서 아사바 고등학교 애들이 보내 준 수영장 파티 사진을 보며 시간을 때웠다. 잠시 후, 핸드폰에 문자 메시지 알림이 떴다. 메시지에는 아까처럼 노선도가 첨부되어 있었는데, 이미 3분의 2쯤 지나왔기에 앞으로의 노선 역시 크게 변경되지는 않은 상태였다. 그리고 새로운 노선도는 도착 시간이 7시 45분으로 바뀌어 있었고, 아래쪽에는 붉은 글씨로 "굶을 준비나 해."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어째서 늦게 도착하면 굶어야만 하는 걸까? 중간에 뭔가 중요한 단서가 빠진 걸까? 아직 열차도 도착하지 않았겠다 난 상대방에게 왜 그런 문자를 보냈는지 물어보기로 했다. 알 수 없는 번호왜냐하면 오늘 기도춘에서 제공하는 점심은 1개월 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제공되지 않는데, 넌 예약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아침부터 현실적인 주제를 보니, 정신이 확 들었다. 새로운 노선을 봤다만, 조금씩 늦었다고는 해도 30분이 지연될 수는 없지 않나? 하지만 그런 의문점은 지하철 역에서 나온 뒤에 해소되었다. 기도춘 근처의 9호선 출구엔 바리게이트가 쳐져 있었고, 그 뒤로 노란색 모자를 쓴 아이들이 내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니, 오늘 근처 초등학교의 봄 소풍이 있어서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15분 동안 통행이 금지된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러나 이 지하철 역의 다른 출구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거나, 아니면 신호등이 여러 개인 사거리를 건너야 했다. 결국 여기서 15분 동안 기다리는 게 제일 빠른 선택지였다. 겨우 목적지에 도착했을 땐, 시계는 이미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기도춘의 출입구에 도착 후 기다란 대기줄에 감탄을 금하지 못하고 있을 때 순식간에 낯이 익은 사람에 의해 선두열의 자리로 끌려 들어갔고, 옆에는 안색이 좋지 않은 노아가 서 있었다. 어딘가 화가 나 보이는 노아에게 어색하게나마 인사를 건넸지만, 그녀는 곧바로 날 기도춘의 검표원에게로 끌고 갔다. "꼬르르륵…!!" 배에서 천둥이라도 친 것 같은 소리가 들려오자, 노아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은 순식간에 입을 다물고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무서울 정도로 고요한 적막이 흘렀다. 이어서 얼마 지나지 않아 다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각자의 일로 돌아가긴 했지만, 난 도저히 아무렇지도 않게 있을 수 없었다.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격렬한 운동'을 해서인지 점점 더 배가 고파지는데, 설마 배꼽 시계가 경매장에서 갑자기 울리진 않겠지…… 입구에서 나와 자리를 바꾼 사람이 왜인지 익숙해 보였던 건, 아마 쿠츠지의 사무실에서 '조각상' 역할을 맡고 있던 사람 중 한 명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 사람은 봉투 안에서 샌드위치를 꺼내더니, 곧장 입안으로 쑤셔넣기 시작했다…… 내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면, 저 샌드위치는 아마 내 아침밥이었을 것이다. 고개를 드니, 입구에 "경매 기간 음식물 반입 금지"라고 적혀 있는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나는 "굶을 준비나 해."라는 말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나는 조금 늦게 도착했기에 얼마 기다리지 않고도 입장 차례가 금방 돌아오게 되었다. 그리고 노아에게 '효'가 미리 준비해 둔 티켓을 건네받자, 이제 임무가 정식으로 시작된 것이 와닿았다. 티켓 검사를 마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따라 기도춘에 들어섰다. 그리고 경매 참가자들은 첫 번째 갈림길에서 일반 손님들과 떨어져 경매 전용 장소로 향했다. 우리는 미로처럼 구불구불한 복도를 지나 꽃으로 장식되어 있는 홀에 도착했다. 꽃이 활짝 핀 덩굴 식물로 감싸여져 있는 주홍색의 기둥은 봄내음을 물씬 풍기고 있었다. 꽃장식에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꽃들이 사용되었지만, 노아가 보내온 문자 메시지에 따르면, 경매에는 기도춘이 특별히 정성들여 키우는 매우 희귀한 품종이 출품된다고 했다. 우리가 참가한 경매에는 황금동백꽃, 산호스키미아, 백설모란이 출품되는 모양이었다. 자리에 놓인 <경매 안내서>를 읽어보니, 기도춘의 경매 방식은 일반적인 경매 방식과 큰 차이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매매자 호가식 경매'로, 더욱 쉽게 말하자면 '내림 경매'라고 말하는 방식이었다. 이 방식에서는 높은 가격부터 시작해서 입찰자가 나올 때까지 가격이 점점 낮아지며, 경매사는 단계적으로 가격을 낮추면서 구매자가 나타나거나 의뢰인이 미리 정해 둔 하한가보다 낮은 가격이 제시되어 유찰될 때까지 계속해서 진행한다. 경매가 진행되는 동안 두 명 이상의 구매자가 나타나면 경매사는 새로운 가격을 제시하며 익숙한 경매 방식인 '오름 경매'로 전환한다. 그 후, 더 이상 가격을 올리는 사람이 없을 때까지 다시 경매를 진행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정된 위치에 앉아 경매가 시작되길 기다렸다. 하지만 노아가 계속해서 문자 메시지를 보낸 덕분에 내 핸드폰은 쉴 새 없이 울렸고, 주변 사람들은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내 주머니를 쳐다보았다. 나는 한숨을 쉬며 핸드폰을 꺼내 노아가 보낸 문자 메시지를 읽었다. 알 수 없는 번호참가자들은 많지만, 대부분은 어중이떠중이들이야. 뭐, 경매를 구실로 토죠 쿠로네와 함께 차를 마시러 온 재력가들도 있지만 말이야. 알 수 없는 번호정보에 따르면, 토죠 쿠로네는 오랫동안 춤을 추거나 샤미센을 켜지 않았다고 해. 하지만 전설의 사귀인 중 한 명으로서, 추종자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토죠 쿠로네를 만나려고 할 거야. 알 수 없는 번호그러니까 경매가 시작되면, 다가온 기회를 놓치지 않게 열심히 노력해 봐. 정말 사람 불안하게 만드는 정보들 뿐이었다. player카드에는 돈이 충분히 들어 있는 거야? 입찰했다가 돈을 못 내는 그런 경우가 생기진 않겠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쳐다보는 노아의 표정으로 미루어 보건대, 쿠츠지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돈이 많은 사람인 모양이었다. 알 수 없는 번호이 카드에는 지금 1000만 코인이 들어 있어. 지난 경매에서 있었던 꽃의 최대 입찰 금액에 의거해서 책정된 데다가, 이보다 더 큰 금액에 입찰된 기록은 없었지. 역시 괜한 걱정이었나보다, 쿠츠지는 나보다 훨씬 더 부자로 보였었으니 말이다. 만일 내가 그의 입장에서 이런 얼토당토하지 않은 질문을 받았다면, 어이가 없어서 얼굴이 붉어져 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왜 나까지 말로 하지 않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걸까? 아무래도 커뮤니케이션 공포증이 전염된 걸지도 모르겠다. 알 수 없는 번호물론 돌발 상황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곤 확신할 수 없으니까, 계속해서 주의해 주길 바라. 노아는 메시지를 보냄과 동시에, 17이라고 적혀 있는 번호판을 건네주었다. 알 수 없는 번호자, 이게 네 경매 번호판이야. 입찰할 땐 이 번호판을 들도록 해. player알겠어. player그런데 물어볼 게 하나 있어. 알 수 없는 번호곧 경매가 시작되니까, 궁금한 게 있으면 빨리 물어봐. player어떻게 모든 문자 메시지의 문장 부호를 그렇게 정확하게 쓰는 거야? 덕분에 나도 혹시나 문장 부호를 틀리지는 않았을까 싶어서 다시 한번 검사하면서 보내고 있다구. 알 수 없는 번호너랑은 상관없는 얘기야. player알겠어 시스템 알림: PLAYER 님이 메시지를 삭제했습니다. player알겠어. 사람들이 자리를 채우기 시작하자, 어디선가 경매의 시작을 알리는 징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따라가 보니 한켠에 황금색 징이 보였다. 순식간에 조용해진 경매장의 모습은, 마치 고등학교 야자 시간에 뒷문으로 지켜보고 있는 담임 선생님을 발견한 듯한 학생들을 연상시켰다. 기도춘의 경매사가 단상에 올라왔다. 경매사는 요염한 허리에 담배 파이프를 차고,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을 지닌 여성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그녀를 향해 인사를 하는 것으로 보아 그녀가 이곳의 책임자인 듯하다. 그리고 그녀가 손뼉을 치자, 꽃을 든 소녀 세 명이 줄지어 나타나 단상에 올라왔다. [경매사]이번 경매에서 판매되는 꽃은 세 종류로, 황금동백꽃, 산호스키미아, 백설모란이며, 모두 기도춘에서 정성을 다해 기른 품종입니다. 그러니 경매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꽃을 감상하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경매사의 말이 끝난 직후, 소녀들은 단상에서 내려와 우리들의 사이를 천천히 지나갔다. 소녀들은 길지도, 짧지도 않게 머물러 손님들이 충분히 꽃을 감상할 수 있게끔 했다. 첫 번째 꽃은 황금동백꽃이었다. 중앙에 놓인 아기 주먹 만한 황금빛의 동백꽃은 반달 모양을 이루었고, 그 주변은 마치 달을 감싸고 있는 별처럼 새하얀 꽃들로 장식되어져 있었다. 그리고 소녀가 꽃을 창가로 가져가자 햇빛이 꽃잎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나는 어째서 이 꽃이 황금동백꽃이라고 불리우는지 깨닫게 되었다. 다음 꽃은 산호스키미아로, 본디 키우기가 매우 어려운 품종이었다. 이 꽃은 마치 투명한 보석처럼 햇빛 아래에서 투명하고 선명한 붉은색을 내비치고 있었다. 주변을 몬스테라로 장식한 데다, 사이사이로 끼워놓은 새하얀 백묘국으로 인해 스키미아는 마치 설원 위에 놓인 붉은 마노와도 같아 보였다. 마지막 꽃은 놀랍게도 대생으로 자란 백설모란이었다. 어림잡아 지름이 약 18cm, 높이가 약 10cm에 가까워 보이는 그 크기는 꽃의 왕이라 부르기에 충분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백옥처럼 새하얀 꽃잎 가운데에선 연분홍빛 꽃잎이 샛노란 꽃술을 돋보이게 했고, 주변에 장식된 유칼립투스 잎으로 인해 마치 세속을 초월한 듯한 청아함을 느끼게 만들었다. 손님들에게 꽃을 보여 준 소녀들은 이후 다시 단상 위로 돌아갔다. [경매사]그럼 지금부터 15분 동안 생각하실 시간을 드린 후, 황금동백꽃부터 먼저 경매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알 수 없는 번호사람들은 세 차례의 꽃 경매에 참가할 수 있지만, 낙찰받을 수 있는 건 그중 하나야. player그러니까, 만약 내가 첫 번째 꽃을 낙찰 받았다면 나머지 경매엔 참가할 수 없다는 소리야? 알 수 없는 번호맞아. 알 수 없는 번호그런데 왜 내 번호가 아직도 '알 수 없는 번호'라고 뜨고 있는 거야? player? 알 수 없는 번호네 핸드폰 화면이 보였어…… 나는 주변 사람들의 의문스러운 눈빛을 뒤로한 채, 조용히 연락처에 노아의 번호와 이름을 추가했다. player나한테 계획이 하나 있어. 우리가 서로 다른 꽃에 입찰한다면 확률이 좀 더 높아지지 않을까? 노아아니. 경매 참가 자격을 얻기가 어려워서, 엄청나게 애를 썼는데도 결국 한 개의 번호표 밖엔 손에 넣을 수 없었어. player그럼 힌트라도 좀 줘 봐. 내가 어떤 경매에 참가하면 될 것 같아? 노아어차피 전부 랜덤 박스니까 규칙 따윈 존재하지 않아. 보스가 어제 다 말해 줬잖아? 그냥 평소에 뒷도라 패에 거는 것처럼 해버려. 그렇다면, 그냥 찍는 수밖에 없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