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굴에서도 정신만 차리면 살아남는다
퍽……
맹세코 이 주먹은 조건 반사다, 절대 무서워서 그런 게 아니다.
[???]으앗, 내 코. 내 코오…… 흐엥……
엥?
방금까지 기세등등하던 해골이, 바닥에 주저앉아 불쌍하게 코를 움켜쥐며 울먹이고 있었다. 비록 여전히 무서운 모습이긴 했지만, 최소한 그렇게 위협적이지 않다는 건 확실했다.
상대는 분명 이 가게의 점원일 것이다. 일부러 이런 분장을 해서 손님들을 끌어모으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내 양손을 살펴보았다. 음…… 이 직업은 의외로 위험한 걸지도 모르겠다.
[player]미, 미안해요, 고의는 아니었어요. 갑자기 뒤에 나타나길래 저도 모르게 그만……
[점원]괜찮아요, 제 생각이 짧았네요…… 저 아이가 더 무서워할 줄 알았는데, 이럴 줄은 몰랐네요.
[이치노세 소라]수많은 오컬트 현상들은 과학적으로 해석이 가능하죠. 결론적으로, 유령은 그저 인간이 상상해 낸 공포물의 캐릭터일 뿐,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낄 필요는 없어요.
[이치노세 소라]하지만 당신의 분장은 나쁘지 않았어요, PLAYER 반응이 바로 그 증거죠.
[player]여기 아이가 할로윈 축제 의상을 사고 싶어 하는데, 혹시 추천해 주실 수 있나요?
고작 어린아이한테 담력에서 밀려 버린다면 체면이 안 선다. 나는 이 화제를 서둘러 끊고, 관심을 '의상 구매' 쪽으로 돌렸다.
[점원]안심하세요. 깨비깨비 옷가게는 오픈이래 삼 년 동안 계속해서 고객 만족도 100%를 유지하고 있답니다~
이 독특한 손님 대하는 방식과, 엄청난 호평에 대해 나는 깊은 의구심이 들었다……
[점원]음. 여기 손님분께선 우아한 드라큘라 백작이 어울릴 것 같네요.
[이치노세 소라]그런가요…… 저한테 맞는 사이즈를 주시겠어요? 한 번 입어볼게요…… 응? 이 마법사 의상은……
[점원]손님, 안목이 정말 대단하시네요. 이건 유명한 연금술사 니콜라스 코스튬의 시그니처 한정판입니다. 이걸 입으면 행운이 찾아올 거예요~
[이치노세 소라]이건 PLAYER 잘 어울릴 것 같은데.
[player]나한테 골라 주는 거야? 하하, 고마워. 근데 요즘 가게가 너무 바빠서, 할로윈 축제에 참가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우선 네 걸 골라보자.
[이치노세 소라]입어 봐, 어쩌면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잖아.
[점원]할로윈이라는 날은 어떤 의미론 추수를 기념하는 날이기도 하죠. 평소에도 그렇게 바쁜데, 할로윈에도 일만 하게 된다면 너무 불행할 것 같은데요. 그래도 한번 참가해 보는 건 어떠세요? 이한시의 할로윈 축제는 절대 실망하지 않을 거예요.
[player]그럼…… 네.
[점원]그럼 손님, 여기로 와 주세요, 피팅룸은 이쪽이랍니다.
열정적인 점원은 나한테 고민할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입어 볼 옷들을 내게 건넨 뒤, 숨 쉴 틈도 없이 나와 소라를 피팅룸으로 밀어 넣었다.
아무튼 이 의상도 나쁘지는 않아 보인다. 내 취향에도 딱인 듯하니, 일단 입어보도록 하자.
[이치노세 소라]PLAYER, 옷 다 골랐어? 나는 다 입었어.
피팅룸의 문을 열자, 귀엽지만 우아함을 겸비한 '드라큘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진한 브라운 색상의 머리카락은 피부를 더욱 창백해 보이게 만들었고, 아름다운 푸른색 눈동자는 바다의 색채를 느껴지게 했다. 정말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이건 친해서 하는 빈말이 아니다. 옆에 있던 점원마저도 같이 기념사진을 찍고 싶은 걸 꾹 참는 모습이었다.
[player]잘 어울리네, 유년기의 드라큘라 백작이라~
[이치노세 소라]콜록, 너도 그래. 존경하는 마법사 각하.
하지만 칭찬으로 소라의 표정이 풀어지지는 않았다. 소라는 거울 앞에서 몸을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커다란 망토 위에 달린 액세서리들 때문에 조금 불편한 듯한 모습이었다.
[점원]앗, 손님. 발밑을 조심하세요.
[player]조심……
눈앞에 있던 소라가 망토를 밟고 넘어지려 하자, 나는 빠르게 손을 뻗어 소라를 잡아 주었다.
[이치노세 소라]고마워…… 이 옷은 화려하지만, 안전성은 조금 고려해 봐야 할 것 같네……
[player]망토 위에 달린 액세서리들이 너무 뾰족해. 패션쇼 동안 학교에 구경 오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이런 옷을 입고 돌아다니기엔 너무 위험할 거 같아.
[이치노세 소라]나도 그렇게 생각해.
소라 역시 망토의 문제를 파악한 모양이었다. 소라의 눈동자에는 내가 알아볼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것은 마치 번뇌 같기도 했고, 또…… 기쁨 같기도 했다.
이상하다…… 소라가 이 가게를 찾은 건 자기한테 어울리는 할로윈 의상을 찾기 위해서였을 텐데, 좋은 의상을 하나 버리게 되었는데도 어째서 '기쁨' 같은 감정을 표출하는 걸까?
[이치노세 소라]콜록콜록…… 그럼 다른 의상을 찾아봐야겠어, 어쩔 수…… 없네.
[점원]그럼 귀여운 강시 의상도 괜찮을 것 같아요. 이런 타입은 액세서리가 별로 많지 않아서, 움직이기에도 비교적 편한 의상이랍니다.
[이치노세 소라]그것도 예정된 선택지 중 하나지만, 난 사실……
[player]응?
[이치노세 소라]아냐, 갈아입어 볼게.
난 사실? 어째서 말을 하다 말았을까, 신경이 쓰인다. 하지만 소라는 내가 생각할 새도 없이 다시 피팅룸으로 돌아갔다.
나는 거대한 물음표를 안곤 내가 입고 왔던 옷으로 다시 갈아입었다. 그리고 점원의 또다른 추천을 거절하며 소라가 다시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의상에 대한 욕심 같은 건 없어서, 소라의 결정을 돕는 걸 우선으로 하고 있었다.
[이치노세 소라]이건 어때?
피팅룸의 문이 열리자, 자그마한 꼬마 강시가 천천히 걸어나왔다. 이마에 붙어있는 부적이 머리카락 사이에서 그의 발걸음에 맞춰 팔랑거린다. 가서 만져 보고 싶은 충동이 솟구쳤다.
[player]드라큘라 의상만큼 화려하진 않지만, 이것도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점원]강시처럼 껑충껑충 뛰면서 다녀보세요. 그럼 더 빠르게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 거예요~
[이치노세 소라]음, 이런 신체에 무리가 가는 행동이 필요한 의상은 의사 선생님이 허락하지 않을 거야.
[player]그럼 우선 후보로 남겨 두고, 다른 의상들도 봐보자.
[점원]손님, 마법사는 어떠신가요? 방금 옆에 계신 손님도 입어보셨는데, 두 분이 같은 의상으로 황금보다 값진 사랑을 표현해 보는 것도 아주 좋을 것 같아요.
[player]여기서 왜 사랑이 나오는 거죠!
[점원]어설픈 의견일 수도 있지만, 홀로 천 년을 살아온 마법사 X 화려한 천재 마법사의 조합이라면 분명 큰 주목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소라는 아무 말 없이 샘플 의상을 들고는 피팅룸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오 분도 채 되지 않아, 피팅룸의 문이 다시 열렸다.
[player]이렇게 빨리…… 음?
피팅룸에서 나온 건, 마법사 의상이 아닌 원래의 일상복을 입은 소라였다. 그는 단호한 거절의 의사 표시로 인상을 쓰며 점원에게 의상을 돌려주었다.
[점원]손님, 이 의상에 불편한 점이 있으신가요?
[이치노세 소라]……아뇨, 의상은 좋았어요.
[점원]그럼 사이즈가 안 맞았나요?
[이치노세 소라]아니, 의상의 문제가 아니에요……
점원이 어떻게 물어보든, 이치노세 소라는 고개를 저었다. 소라가 고민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다른 가게들도 둘러보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가게 밖으로 나가려는 찰나, 소라가 고개를 돌리며 한구석을 슬쩍 바라보았다.
[점원]저기는…… 왠지 또 만나게 될 것 같네요, 손님.
[player]……?
번화가의 마지막 가게를 둘러보고 나니 하늘의 주인은 이미 뒤바뀐 상태였다. 달이 태양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고, 네온사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빛을 뽐내고 있었다.
[이치노세 소라]콜록콜록…… 내가 뭘 하는 거지, 빨리 결정해야만 하는데……
시월 말의 일교차는 이미 뚜렷했다. 나는 괜찮았지만, 소라에겐 분명 영향이 있을 것이다. 컨디션이 떨어지고, 아직 맞는 의상도 찾지 못한 현재의 상황이 소라로 하여금 초조함을 일으키게 만들고 있었다.
나는 내가 보기엔 괜찮았지만 소라가 여러 가지 핑계로 거절했던 의상들을 떠올려 보았다. 이렇게 많은 가게를 돌았으니, 분명 수확이 있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때 소라가 내비친 '기뻐하는' 듯했던 묘한 감정……
[player]……소라.
곰곰히 생각해 본 뒤, 나는 순간 대담한 추측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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