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을의 바람은 여름에 부는 바람보다 더 시원했고, 나와 에인이 있는 모퉁이는 잘 보이진 않지만 바람이 잘 통하고 있었다. 서늘한 바람이 샛노란 낙엽과 함께 우리 사이를 지나갔고, '심문'을 위한 무대를 펼쳐 주었다.
기회를 줄게. 도대체 나한테 뭘 숨기고 있는 거야? 솔직하게 말하면 봐주겠어.
크흠, 그게 말이야…… PLAYER. 너도 알아차렸겠지만, 난 탈모가 아냐.
알아차린 게 아니라 그냥 합리적인 추측일 뿐이지. 탈모인데 발모제도 바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일단 비논리적이야.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꼬리 끝부분의 맨살 부분이 깨끗한 걸 보면 탈모가 아니라 인위적으로 자른 걸로 보이기도 하는걸.
자세히 보지도 않았는데 그렇게나 자세히 알아내다니, 관찰력이 마을의 조사대와 견줄만한걸.
그런 칭찬 몇 마디로 날 속였다는 사실을 그냥 넘어가진 않을 거야.
그게 사실은 말이야, 내가 며칠 전에 서점 인테리어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말했잖아? 그때 책을 옮기다가 실수로 꼬리에 페인트가 묻었단 말이야.
그런데 그 붉은색 페인트가 잘 지워지지 않아서 충동적으로 그냥 전부 밀어 버렸던 거야.
그렇다면 그날 내가 꼬리를 만졌을 때 분명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렸을 텐데 말이야.
크흠, 그게 말이지…… 자르고 보니까 보기가 좀 흉하더라고. 그래서 이웃 아주머니한테 접착제를 빌려다 털을 다시 붙여놓은 거야. 하지만 접착제가 좀 안 좋은 거였는지 네가 만지니까……
에인, 네가 이런 방법을 썼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는걸.
하하. 흑역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PLAYER, 너 한 명 뿐이니까 말이야.
내 안색이 이상한 걸 알아차렸는지, 에인은 더 이상 웃지 않고 조심스럽게 다가와 사과를 건넸다.
진작에 너한테 알려 줬어야 했는데, 얘기를 하려고 할 때마다 말이 끊겨서 말이야. 게다가 네가 전부 나을 때까지 내 옆에 있어 준다고 하니까 그만……
………………
너랑 같이 신사에 가서 시원하게 마작을 칠 테니까, 화 내지는 말아 주라. 지난번에 낭비한 시간까지 전부 보상해 줄게. 그리고 다음부터 내 꼬리도 마음대로 만져도 되니까, 응?
복슬복슬한 꼬리가 주인에 의해 좌우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니, 에인은 내가 이 조건을 받아들일 거라고 확신하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더 괘씸한 것은, 마음속으로 저울질을 한 결과, 에인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다는 걸 알아버린 것이다.
내가 너랑 같이 마작을 쳐 주는 거겠지. 있는 시간 없는 시간 전부 마작장에 끌어다 쓰는 사람은 바로 너니까 말이야. 게다가 여우 꼬리는 전부터 마음대로 만질 수 있었으니까, 이건 사과라고 볼 수 없어.
그렇게 말한 나는 손을 벌컥 내밀어 여우 꼬리를 만지면서 마음 속에 깃든 울분을 풀어냈다.
음? 이건…… 익숙하면서도 낯선 느낌이 드는데……?
지난 번이랑 똑같았다. 이어서 난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손에 묻은 주황색의 털뭉치를 바라보았다.
에인, 너 정말로 털이 빠지고 있는 것 같은데.
뭐어?! 말도 안 돼!
방금 전까지만 해도 홀가분했던 여우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로 손을 뻗어 꼬리를 매만졌다. 그러더니 공중으로 날아오른 털들이 떨어지면서 주변을 주황색으로 물들였다.
우와, 털 빠짐이 제법 심한데.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PLAYER, 이걸 어쩌면 좋아?!
음…… 이건 나도 잘 모르겠네. 네가 말했듯이 여우마다 개체 차이가 있는 법이니까 말이야.
나는 에인의 도움 요청을 무시한 채 몸을 돌려서 그대로 마작장으로 향했다. 충격에 빠진 여우는, 정신을 차리면 알아서 병원으로 갈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같이 가 주지 않을 거야. 사람을 속인 죗값은 치뤄야 하니까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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