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절로 눈이 떠질 때까지 숙면을 취한 주말 아침, 나는 습관적으로 캣챗을 열어 밤새 어떤 소식이 업데이트되었는지 살펴봤다
- 면허증 보유자라서 아쉽습니다, 사은품이 뭔지라도 알고 싶습니다.
직접 물어본다
[player]무슨 고민이라도 있어?
나는 소라의 맞은편에 앉았다. 의자에서 난 가벼운 소음이, 아직 멍해 있던 소라의 정신을 돌아오게 만들었다.
[이치노세 소라]어, PLAYER? 언제 온 거야?
[player]방금 왔어, 지금은 그렇게 바쁘진 않거든. 근데 넌 종일 계속 멍만 때리면서 먹지도 않고 있던데…… 혹시 음식이 입에 안 맞는 거야?
[이치노세 소라]아니, 음식은 맛있어. 하지만 이건…… 음식의 문제가 아냐……
[player]그럼…… 무슨 고민이야? 나한테도 알려 줘,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이치노세 소라]……PLAYER, 너는 마법사가 좋아, 아니면 드라큘라나 강시가 좋아?
[player]엥?!
너무 갑작스러운 질문을 들은 나는 잠시 얼어붙었다. 이 질문이 과연 소라의 고민과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 나는 의심의 눈초리로 테이블 위에 놓인 잡지를 바라보았다. 혹시 저거 때문인가?
[이치노세 소라]콜록콜록…… 미안, 제대로 설명해 주지 못했네. 내 말은…… 할로윈 데이에, 만약 사탕이 있다면 저 셋 중 누구에게 주고 싶냐는 거야.
[player]할로윈이라면, 생각 좀 해 보자……
[player]낭만적인 드라큘라라면 분명 나의 관심을 끌겠지, 하지만 우아한 마법사도 나쁘진 않을 것 같고…… 잠깐, 귀여운 강시도 무시할 수 없어……
[이치노세 소라]또 동점인가……
그는 고개를 숙인 채 또다시 큐브를 돌리기 시작했다. 나의 대답이 별 도움이 안 되었던 모양이다.
[player]그러니까, 넌 지금 할로윈 분장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는 거지?
[이치노세 소라]응…… 올해 학교에서 할로윈 패션쇼를 할 거래. 아오츠유 중학교 학생은 전부 참가할 수 있고, 친척이나 친구를 초대해서 함께 참가할 수도 있어. 그리고 우승자한테는 특별한 상품이 있지.
[이치노세 소라]의사 선생님께도 한번 여쭈어 봤는데, 내 몸 상태도 지금은 패션쇼에 참가하는 정도는 아무 문제 없을 거라고 하시더라고.
패션쇼에 참가하는 것조차 의사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니, 이 아이의 상태는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 더 심각한가 보다.
[player]중요한 건…… 특별 상품이지. 이게 네가 이벤트에 참가하고 싶은 진짜 이유겠지~
[이치노세 소라]계산 결과, 이번 상품은 새로 출시되는 SF 기념 책자일 확률이 72%정도 돼. 이런 상품은 확실히 참기 힘들지.
[player]상품 같은 것도 확률로 계산이 되는 건가…… 그럼 방금 물어본 분장이랑 관련된 질문들도 다 데이터를 위한 거야?
[이치노세 소라]들켜 버렸네. 네 생각 대로, 이게 바로 데이터를 통해서 확인한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세 가지 의상'이야.
[player]역시…… 그래도 모처럼 참가하는 건데, 스스로가 좋아하는 코스튬으로 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이치노세 소라]으음……
소라는 불현듯 뭔가가 떠오른 듯, 풀어지기 시작했던 표정을 다시 일그러뜨리며 손에 든 큐브를 돌리기 시작했다. 혹시 내가 뭔갈 잘못 말했나?
[이치노세 소라]코스튬은 스스로가 좋아하는 캐릭터로 해야 매력적이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은 있지만, 난 그게 근거 없는 '정신론'에 불과하다고 생각해.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거든, 콜록콜록……
[player]그래…… 그럼 넌 뭘 고를 거야?
[이치노세 소라]세 캐릭터의 확률은 모두 33%야, 도저히 결정할 수가 없어.
[player]그럼 이론은 끝났고, 이제 남은 건 실행 뿐이네. 카페에 앉아서 이렇게 고민만 해 봤자,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할 거야.
[player]똑같은 세 가지 의상이라고 해도, 직접 입어보면 또 다를 수도 있어. 어차피 사야 하는 것들이니까 직접 가서 입어보자.
[이치노세 소라]하지만 누나는 다른 도시에 갔어, 아무리 빨라도 다음 주 월요일은 되어야 돌아올 텐데.
[player]간단하잖아, 내가 같이 가 줄게.
평소엔 아무리 성숙해 보일지라도 소라는 결국 13살짜리 아이에 불과하다. 무의식중에 기대려는 마음을 나타낸 소라를 위해, 나도 최선을 다해 도와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치노세 소라]음? 하지만 카페 일은…… 괜찮은 거야?
[player]마침 내일이 휴무야. 너랑 같이 쇼핑을 하는 것도 괜찮은 스트레스 해소법이지.
[이치노세 소라]그, 그럼 그렇게 하자! 내일 여기서 만나. 여긴 나나미가 추천한 가게니까 도움이 될 거 같거든.
[player]응, 만날 때까지 기다릴게.
소라가 éternité를 떠나는 걸 확인한 후, 나는 손에 들려 있던 주소를 바라보았다……
[player]'깨비깨비'…… 옷가게?
이상한 이름이다, 안 좋은 예감이 밀려온다.
[player]232호, 233호, 23…… 소라……! 찾았어, 바로 여기야.
레이나가 추천해 준 가게는 번화가의 맨 끝에 위치해 있었다. 화려한 옷가게들 사이에서, 혼자만 칙칙한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어서 눈에 띄지 않았다. 입구에는 상호나 로고도 없이 평범한 보드가 놓여 있었고, 위에는 '영업 중'이라고만 쓰여 있었다. 레이나가 주소를 알려 주지 않았다면, 난 아마 영원히 이곳을 찾지 못했을 정도다.
[이치노세 소라]……간판도 없다니, 어쩐지 내비게이션에도 잘 안 뜨더라.
나는 소라를 데리고 이상하리만큼 오래되어 보이는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라라, 길 잃은 어린 양이여. 악마의 고향에 온 것을 환영하오.
문을 열자 칠판에 손톱을 긁는 듯한 소름 끼치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겹쳐지며, 정상인의 체온보다 낮게 느껴지는 차가운 손가락의 감촉이 나의 손목을 스쳐 지나갔다.
내가 뻣뻣하게 굳은 목을 힘겹게 돌리며 모습을 확인하자, 푸른 형광색을 발산하는 '유령'과 코앞에서 눈 맞춤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