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이대로는 너무 아쉬운데…… 음, 히데키, 우리 이제 어쩌지?
[아케치 히데키]네? 저라면 무슨 방법이 있을 거라 생각하나요?
[player]당연하지, 내 직감이 너라면 분명 어떠한 방법이 있을 거라고 말해주고 있다고. 하하, 딱히 근거는 없지만.
나는 어둠 속에서 히데키의 표정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웃음기 섞인 그의 말투로 미루어 보아, 그는 정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즐거운 상태임을 알 수 있었다.
잠시 후에 직원이 상황을 파악하고자 손전등을 들고 이쪽으로 왔고, 히데키가 직원의 귀에 대고 뭐라고 말을 하자, 그는 뭔가 깨달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객석에서 일어난 소음으로 인해 그 대화 내용을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player]방금 뭐라고 한 거야?
스태프가 떠나고, 나는 히데키에게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대답을 하는 대신, 씨익 미소만을 지어 보였다.
[아케치 히데키]곧 알게 될 거예요.
[player]응?
[배우 B]내 사랑하는 그대여……
공연장에 갑자기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비록 주변은 어둠뿐이었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바라봤다…… 무대다! 배우들의 연기가 다시 시작된 것이다!
[player]스태프에게 배우들이 부르던 노래를 계속 부르라고 시킨 거야?
[아케치 히데키]음악은 사람들을 조용하게 만드는 가장 빠른 방법이기도 해요. 사실 이 공연장은 처음부터 가장 포괄적인 음향 제어 설계를 채택해 건설됐죠. 누가 어느 위치에 있든 음향설비의 도움 없이도 고르게 소리를 전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이 공간을 디자인한 설계자의 원래 목표였어요.
[아케치 히데키]극장 투자자가 가능한 많은 관객을 수용하도록 하기 위해 강제로 거대 공연장으로 확장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정전 사태는 극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을 거예요. 가수에게 마이크도 필요 없었겠죠.
[player]그런 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따로 공부라도 한 거야?
[아케치 히데키]흥미 있는 분야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하려는 것은 나쁘지 않죠. 그렇지 않나요?
[player]그렇지.
나는 어둠 속에서 히데키의 실루엣만을 겨우 볼 수 있었다. 그가 오른손을 들어 조용히 하라는 사인을 보내오는 듯 보였다.
[아케치 히데키]쉿…… 다음은 이 연극의 가장 유명한 부분, 남자 배우의 10분에 달하는 솔로예요. 매체에서 '가장 감동적인 시곡'으로 선정되기도 했구요. 오늘 PLAYER씨가 즐겁게 들어주셨으면 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공허한 노랫소리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그를 지키겠다는 다짐을 담고 있었다. 비록 무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홀연 연인이 가둬진 옛 성채에 끌려가 버린 듯한 느낌에 빠졌다.
노래의 리듬과 멜로디, 아름다운 화음, 심지어는 배우의 숨소리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 노랫소리를 따라 함께 그리워하고, 슬퍼하며, 기뻐하고, 울고 싶다는 생각이 밀려들어 왔다.
노랫소리는 소음을 뚫고 관객들의 고막을 파고들며 그들의 마음을 다독였다. 모든 것이 음악으로 인해 일순 멈춰 버린 것마냥 따듯하고 아름다워진 것 같았다. 이런 게 바로 음악이 가진 신비한 힘이었구나!
[배우 B]저는 당신을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당신과 함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제 자신에게 물어도 봤습니다, 내 영혼을 가져간 사람이 천사인지, 아니면 악마인지…… 하지만 전 당신이 평범한 소녀라는 걸 압니다…… 지금 절 이렇게 만든 건… 당신을 향한 제 순수한 사랑입니다……
나는 천사 같은 노랫소리에 이끌려 휴대폰의 손전등 기능으로 무대에 빛을 비추려 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히데키 역시 같은 행동을 취했다. 그는 휴대폰을 든 나의 팔을 보며, 푸른 눈동자에 반달 모양을 띄웠다.
우리 둘의 행동에 주위의 관중들이 하나 둘 동참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휴대전화의 부족한 불빛은 무대 위에 움직이는 희미한 그림자만을 간신히 비출 정도였다.
[player]아쉽네…… 정전만 아니었으면 배우들의 몸짓도 볼 수 있었을 텐데.
[아케치 히데키]하지만 이것도 꽤 인상적인 연출 같네요.
[player]맞아. 이 부분은 원래 남자 주인공 내면의 갈등을 묘사하는 부분이잖아. 어둠 때문에 더욱 특별한 연출이 된 거 같아.
솔로의 끝부분에 다다르며 남자 주인공은 아버지의 반대에 맞서기로 결심하고, 사랑을 이루기 위한 강한 일념으로 차가운 지하실을 탈출해 그녀의 집으로 달려간다.
두 남녀 주인공이 재회해 서로 손을 맞잡고 듀엣을 하는 순간, 예비전원이 가동되며 화려한 불빛과 아름다운 춤, 그리고 음악이 이 장면에 비할 바 없는 화려함을 더해주었다.
[배우 B]솔직히 고백하겠어요, 비록 제 마음이 다른 사람들처럼 고귀하지는 않지만, 제 마음이 사랑하는 것은 오직 당신 뿐입니다.
[배우 A]'사랑'이라는 말… 정말로 아름답게 들리네요……
[배우 B]저는 당신이라는 굴레에 속박되고 싶습니다! 제 신분이 얼마나 고귀했다 한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야말로, 저에게 가장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배우 A]나는 자신에게 수도 없이 물었어요. 당신의 구애에 답했던 그때 무엇을 생각했는지. 미래가 순탄치 않을 걸 알면서도 전 당신의 장미를 받아들였죠…… 말도 안되는 일이죠, 미쳤던 게 분명해요!
[배우 B]부디 제 마음을 받아주세요, 내 사랑, 우린 헤어질 수 없는 운명이에요!
[배우 A]받아들이겠어요, 내 사랑. 이번 생에는 절대 그대의 손을 놓지 않겠어요……
나는 휴대폰 손전등을 끄고 편하게 공연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아아, 오늘도 남의 아름다운 사랑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하루였구나!
[극장 안내 방송]손님 여러분, 예기치 못한 사고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극장 측에서 논의한 결과, 일주일 내로 본 공연을 추가 상연할 예정입니다, 티켓을 구매하신 사이트에서 무료로 예약을 진행할 수 있으며, 만약 스케줄이 안 맞으실 경우 극장 매표소에서 환불을 진행해 드리오니, 매표소에서 환불을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극장 방송]마지막으로, 이번 정전사태에 대해 극장 모든 관계자를 대표하여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정전에 의해 받은 안 좋은 경험들은 노래가 준 감동에 씻겨 날아갔고, 3시간의 공연 시간도 훌쩍 지나가 있었다. 나는 오페라 극장을 떠날 때까지 연극에 깊이 빠져들어 있었다.
[아케치 히데키]아직 시간이 이르네요, PLAYER씨, 뒤에 일정이 없다면 커피 한잔 하실래요? 이번 정전에 대한 사과 차원으로 대접하고 싶네요.
[player]풋, 극장이 정전되는 건 누구도 예측할 수 없던 일이야, 네 잘못이라고 할 수 없지, 그렇게 사과할 필요 없어.
[아케치 히데키]어찌 됐든, 제 불찰입니다. 이후에 오늘 일을 추억할 때 정전 사건만 기억하시진 않길 바래요.
히데키는 인상을 쓰며 어떤 난제에라도 부딪힌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히데키는 내가 오늘 일을 어떻게 기억할지 굉장히 신경 쓰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 진지한 모습을 보자, 나도 모르게 히데키를 위로하고 싶어졌다.
[player]인생은 원래 변화무쌍해서, 뜻밖의 행운과 뜻밖의 불행 중에 어떤 게 먼저 올지는 아무도 몰라. 정전 사태가 우리의 만남에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결국 오페라잖아.
찬바람은 무엇에도 굴하지 않고 묵묵히 우리 곁을 지나간다. 눈으로 가득 덮인 상록수 나무의 가지가 마침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기울어졌다. 눈송이가 공중에서 원을 그리며 흩날리거나 수직으로 떨어졌고, 이내 바닥에 우르르 쌓여갔다.
내가 허둥지둥하며 눈을 피하느라 정신이 없자, 히데키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아케치 히데키]그렇군요, 그럼 표현을 바꿔 볼게요. 전 PLAYER씨랑 좀 더 오래 있고 싶은데, 혹시 커피 한 잔 하시겠어요?
[player]당연하지, 나도 그럴 생각이었어.
[점원]어서 오세요, 주문 도와드릴까요?
[아케치 히데키]늘 먹던 걸로 주세요. PLAYER씨는요?
[player]같은 걸로.
[점원]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히데키가 데려온 커피숍은 우아한 빈티지 컨셉의 가게로,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인테리어였다. 눈부신 플로어 창문 앞에는 정성껏 키운 화분이 놓여 있었고, 벽을 비추는 조명이 햇빛과 뒤섞여 은은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player]저 점원이 널 아는 것 같던데, 자주 오던 곳이야?
[아케치 히데키]한동안 안 왔어요. 예전엔 마작부 모임이 있으면 커피숍에서 모였었는데, 부원들이 여기 디저트를 정말 좋아했어요.
[player]어쩐지, 익숙해 보이더라.
히데키의 선택을 받은 곳의 디저트라면 분명 특색이 있으리라 생각하며, 커피숍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몇 마디 흥얼거렸다.
[아케치 히데키]잘 부르시네요.
히데키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한 마디 칭찬을 건넸다.
[player]너도 이 노래 들어 봤어?
[아케치 히데키]흠, 최근에 유행하는 노래잖아요. 사람들이 얘기하는 걸 들어 본 적이 있어요.
[player]아케치 부장이 유행곡도 들을 줄이야, 좀 의외인걸.
[아케치 히데키]그건…… 흠, 가끔은 듣죠.
히데키는 두 손을 맞잡곤, 손바닥을 아래로 꾹꾹 누르는 동작을 취했다. 나의 광범위한 데이터에 따르면, 이 행동은 많은 사람이 자신이 없을 때 취하는 미세한 반응 중 하나이다.
나는 방금 전에 했던 대화를 돌이켜 봤다. 내가 뭔가를 잘못 말했던가? 사실 히데키는 유행 하는 노래를 좋아하지 않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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