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누군가의 시범이 필요할 때인 것 같군. 그리고 이 중에서 시범을 보일만한 사람은 나 하나 뿐이고.
난 모히토 앞에 쪼그려 앉고선, 진심을 가득 담아 모히토에게 '부탁해'라고 중얼거린 뒤 모히토의 머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뻗어나간 손은 반도 못 가고 멈춰 버리고 말았으니, 모히토가 불쾌하다는 얼굴을 하고선 앞발을 들어 내 손을 가로막은 것이다.
노력하는 인간은 결코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손을 옆으로 치웠다가, 갑작스레 손을 다시 내뻗었다.
하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모히토의 앞발이 잔상만을 남기더니…… 또 다시 내 손을 가로막았다.
보아하니 속도로는 이기기 어려울 듯 싶다, 그럼 머리를 쓰는 수밖에. 나는 오른손을 뻗는 척 하다가, 빠르게 왼손까지 뻗어 모히토의 머리를 위아래로 붙잡으려 했으나……
모히토는 옆으로 슬쩍 머리를 젖혀 내 협공마저도 피해 버렸다. 그러고선 가볍게 '그릉' 하며 소리를 내기까지 하니, 그 숨결에 앞머리까지 휘날리는 기분이었다.
패배, 그리고 또 패배. 내가 이에 굴하지 않고 또 다시 공세를 시작하려던 순간, 귓가에 직원들의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남직원]이 표범, 진짜 성격 좋네.
[여직원]그치, 그치. 이렇게 귀찮게 굴어도 화를 안 내는 귀여운 '커다란 고양이'가 있다니! 우리 정원에 있는 고등어 태비랑은 다르네.
[남직원]어떤 애?
[여직원]며칠 전에 들어온 길고양이 말이야. 향이가 저번에 발바닥 젤리 한 번 만졌다가 손에 빨간 줄이 좍좍 그어진 거 있지, 아직도 딱지가 남아 있을걸?
그리고 마치 직원들의 얘기를 이해하기라도 했는지, 모히토는 고개를 슬슬 흔들고선 '가르릉' 하는 소리를 내었다.
[여직원]봐봐, 우리더러 안심하라고 하잖아. 뭐, 내가 보기엔 주인이 잘 지켜보기만 한다면 괜찮을 것 같은데, 넌 어때?
[남직원]괜……찮겠네.
[남직원]두…… 아니, 세 분, 예약은 되어 있으시죠? ……그럼, 이쪽으로 와 주세요. 동물은 잘 관리해 주시구요.
[player]걱정 마세요, 문제 없을 테니까요.
그리고 직원을 따라 기도춘으로 들어가는 길에서, 난 힐리에게 방금 모히토가 낸 '그릉' 소리가 무슨 의미였는지 작은 소리로 물었다.
[힐리]아, 거리감 없는 인간이 가장 싫대.
우리가 기도춘에 들어섰을 때, 토죠 쿠로네는 이미 호수 가운데에 있는 정자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대나무와 새가 그려진 병풍 뒤에 앉은 그녀는, 어렴풋이 비치는 실루엣만으로 그 존재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힐리는 토죠 쿠로네가 딱히 낯설지 않은 듯 별다른 말 없이 바로 본론을 꺼냈다.
[힐리]그날, 두루미를 주웠을 때의 일을 들으려고 왔어요. 자세할수록 좋아요.
[토죠 쿠로네]급한 성격은 여전하시네요, 후후. 그래도 시일이 조금 지났으니, 조금 기억을 더듬어 봐야 할 듯 싶어요.
[토죠 쿠로네]그 두루미를 만난 시각은 아마 밤 10시 즈음이었어요. 그때 저는 마침 동풍 마작장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두루미는 누군가에게 쫓기기라도 한 듯, 제 앞에 떨어진 순간엔 이미 일어날 힘도 없어 보이는 상황이었지요.
[토죠 쿠로네]그리고 두루미를 안아 들어올리던 순간에야, 두루미의 날개와 다리에 큰 상처가 나 있는 걸 발견했답니다.
[힐리]그땐 혼자였나요?
[토죠 쿠로네]그렇답니다. 동풍 마작장은 기도춘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지라, 그날 밤엔 딱히 사람을 데리고 가지는 않았었지요…… 때문에 그 아이를 쫓던 이들과 함부로 맞설 수도 없었던 터라, 근처 편의점에 들어가서 숨을 수밖에 없었어요.
[힐리]그 사람들이 편의점은 안 찾아보던가요?
[토죠 쿠로네]딱히 그러하지는 않았는데…… 아마, 두루미가 제발로 편의점에 들어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 게 아닐까 싶네요.
[힐리]혹시 인상착의는 확인하셨나요?
[토죠 쿠로네]밤중에 유리창 너머로 보았던지라 정확하지는 않지만…… 무기를 든, 건달 같은 사람들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여기까지 들은 순간, 힐리가 옆의 기둥을 쾅 내리쳤다.
[힐리]속았어.
순간, 난 힐리의 말을 이해했다. 당시 '박새'가 말하던 두루미가 이 두루미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무슨 두루미라는 이름의 남자를 찾고 있다던 말은, 아마 우리를 속이기 위해 내뱉은 거짓말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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