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정보상인이다, 내가 두리안을 좋아하는 것도 알고 있다니. 뭐, 내 온갖 사생활마저도 조사해 낸 녀석들이니까, 내가 두리안을 좋아하는 것 따윈 비밀이라고도 할 수 없겠지.
쿠츠지에게서 '카르다몸'을 받아 입 안에 넣자, 두리안 특유의 달콤한 향이 입 안을 가득 채웠다. 속은 큼직한 두리안 과육으로 만들어졌는데, 차가운 냉기 뒤에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러운 식감이 혀를 부드럽게 감싸안았다. 그리고 이어서 삼켜 넘기자 식도로부터 온 몸에 만족감이 퍼져나갔다. 이게 바로 행복이다.
만족스럽게 두 조각을 연이어 먹은 나는, 그제서야 어느샌가 벌려진 나와 쿠츠지 사이의 거리를 눈치챘다. 그의 얼굴에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경악의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player]당신, 두리안 싫어해?
[쿠츠지]당연하지…… 저딴 걸 먹는 사람이 있다니, 믿을 수가 없군.
[player]어째서?! 이렇게나 맛있는걸!
[쿠츠지]쯧……
[쿠츠지]어렸을 때 '누님'이 속여서 먹어 본 적이 있는데, 마치…… 썩은 양파를 입에 넣은 것만 같았어.
[player]'누님'이라니?
[쿠츠지]날 키워 준 사람.
[player]그분도 '효' 소속이야?
[쿠츠지]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player]흠. 그럼 다시 한번 먹어보지 그래? 그때 당신이 먹었던 그 두리안보다 괜찮을 수도 있잖아.
[쿠츠지]됐어.
[쿠츠지]맞다, 나만 안 먹는 게 아니라, '효'에선 아무도 두리안을 안 먹어.
여기까지 말한 그는 코를 움켜잡더니 가까이 다가와서 속삭였다.
[쿠츠지]형씨, 이거 하나는 꼭 기억해 둬.
[쿠츠지]'효' 안에서 두리안을 먹는 건 중죄니까, 큰일난다고.
[player]중죄라니? 먹으면 어떻게 되는데?
그는 기이하게 웃었다, 어쩐지…… 섬뜩한 협박을 하는 것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쿠츠지]어디 한번 해 보던가.
[player]에…… 됐어. 그래봤자 뭐 얻는 것도 없잖아.
쿠츠지의 말을 듣고 나니, 접시 위에 담긴 '카르다몸'이 어쩐지 맛없어진 것만 같아 저 옆에 밀어놓기로 결정했다.
[player]됐어, 다른 얘기나 하자고. 그럼 이어서 거래의 마무리 얘기나 하지?
[쿠츠지]거래라 그러고 보니 슬슬 퍼레이드도 시작하는데, 일단 구경부터 하고 얘기하지.
쿠츠지의 시선을 따라 밑을 내려다보니, 언제 시작했는지 거리가 벌써 조용해져 있었다. 또한 약속이라도 한 듯 조용해진 사람들은 무언가를 기대하듯 '기도춘'의 입구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휴대폰에 표시된 시간이 정각을 가리키는 순간, 환호성이 터져나옴과 동시에 '기도춘'의 대문이 천천히 열렸다.
우선은 전통 복식을 한 남자 몇 명이 목판을 들고 걸어나와 도로의 양측에 섰다. 목판엔 '기도춘'의 문양이 커다랗게 그려져 있었고, 무언가 글씨도 써져 있었지만 크기가 작아 내용은 보이지 않았다.
그 뒤로는 아름다운 옷을 갖춰 입은 소녀 여섯이 손에 꽃바구니를 든 채로 양측으로 나뉘어 걸어나왔다. 그러면서 바구니에서 꽃을 집어들어 옆으로 놓으니, 정 가운데의 길에 딱 맞게 꽃이 떨어졌다.
리듬감 있는 음악과 함께 흰 버선을 신은 나막신이 문 밖으로 살포시 뻗어나와 반달 모양을 그리고선 다시 쏙 들어가는 광경을 보았다. 마치 매끄러운 잉어가 수면 위로 빼꼼 나왔다가 꼬리를 살랑 흔들고 다시 사라지는 모양새였다.
그리고 그걸 몇 차례 반복하더니, 화려한 옷을 입은 여자가 그제서야 몸을 드러내며 매혹적인 발걸음으로 걸어나와 꽃길을 또각또각 걸어갔다.
하지만 거리가 조금 먼 데다가 구슬을 엮어 만든 듯한 면사포를 쓰고 있는 탓에, 그 모습이 잘 보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쿠츠지는 딱히 관심 없다는 듯 창틀을 두드리며 가볍게 말을 이었다.
[쿠츠지]저 사람, 저 사람이 바로 토죠 쿠로네야.
들려오는 곡조에 맞춰, 쿠츠지의 손가락이 리듬감 있게 창틀을 두드렸다. 마치 저 아래의 공연에 푹 빠져든 듯한 모양새였다. 이어서 토죠 쿠로네가 우리의 바로 밑을 지나가려 하자, 쿠츠지는 갑작스레 고개를 돌리곤 날 바라보았다.
[쿠츠지]형씨, 거래를 하기 전에 알려줘야 할 게 있어.
[player]뭔데?
[쿠츠지]내가 형씨를 경매에 보내고, 그 뒤에 이것저것 시킨 일들. 왜 그랬는지 궁금하지?
[player]그렇긴 해. 딱히 가치 있는 정보를 물어왔다는 느낌은 못 받았거든.
[쿠츠지]아니, '형씨'가 갔다는 사실 자체가 가치 있는 정보였어.
[player]그게 무슨 말이야?
[쿠츠지]그날, 형씨가 무슨 꽃을 고르든 토죠 쿠로네를 만날 수 있었다고 하면 어쩔래?
[player]셋 다 토죠 쿠로네의 꽃이었던 거야?
[쿠츠지]아니, 그녀가 형씨를 보고 싶어했기 때문이야.
[player]뭐라고?
[쿠츠지]처음부터 난 내가 지닌 정보로 추측을 했을 뿐이야. 하지만 형씨의 행동이 그 추측을 검증해 주었지.
쿠츠지의 말을 들은 나는 더욱 혼란에 빠졌다. 나와 토죠 쿠로네 사이의 접점을 아무리 찾아본들, 그녀가 내게 먼저 다가올 이유 따윈 전혀 찾아볼 수 없었으니 말이다.
[쿠츠지]형씨. 이전에 한 거래는 여전히 유효하지만, 형씨를 위해 거래의 조건을 바꿔 주도록 하지. 지금부터, 형씨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어.
[쿠츠지]첫째, 약속에 따라 내게서 힐리에 대해 묻는 것. 요즘 그녀가 뭘 하고 다녔는지 알려 주지.
[쿠츠지]둘째, 스스로를 위해 토죠 쿠로네와 관련된 것들을 질문하는 것. 그럼 내가 형씨한테 쓸모 있는 부분들을 추려서 알려 주겠어.
[쿠츠지]생각할 시간을 줄게, 형씨가 진정으로 원하는 선택을 내릴 수 있기를 바라지.
난 쿠츠지의 말을 듣고선 고민에 빠졌다. 원래대로라면 힐리에 관한 것을 묻는 게 맞겠지, 이거야말로 내가 의뢰를 수락한 이유였으니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토죠 쿠로네가 어째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알고 싶기도 했다. 이제 와서 보니, 그날 그녀가 꺼냈던 이야기들엔 무언가 깊은 뜻이 숨어 있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평범했던 것들이, 실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던 걸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한참을 고민해 봐도 선택을 내리기는 힘들었다. 사라와 라이언의 걱정하는 얼굴이 내 머릿속에서 번갈아가며 나타났다가도, 동시에 귓가에 토죠 쿠로네의 나긋나긋한 속삭임이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쿠츠지]하아… 있잖아, 형씨가 좀 더 스스로를 위한다고 해도 탓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렇다면,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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