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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작업 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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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yer]영감님, 제가 보조 도와드릴까요?
[영감님]좋지, 그럼 날 따라오도록 해.
무대 공연을 돕는 일은 왠지 재밌을 것 같다. 아무래도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한 게 아니니까 영감님이 먼저 도와달라고 하신 거겠지?
관중석 뒤편
나는 영감님을 따라 관중석 뒤로 왔다. 그리고 오는 도중에 얘기를 나누며 영감님이 이곳의 조명 기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영감님은 오늘의 내 주요 임무가 팔로우스팟 조작이란 사실을 알려 주었다.
팔로우스팟은 관중석 맨 뒷줄 중앙에 위치해 있다. 난 이곳에서 몇 번 공연을 관람한 기억은 있지만, 무대 작업에 직접 참여하는 건 처음이었다. 그래서 어딘가 마음이 들뜨기도 했다.
조명 기사
[조명 기사]……기억했지? 이 흰색 버튼이 가동 버튼이고, 오른쪽에 있는 회전판으로 조명 색을 바꾸는 거야. 다른 버튼은 오늘 공연에선 안 쓸 거니까 내버려 두면 돼.
[조명 기사]좀 이따 사라 단장이 무대에 오르면 천정 조명이 내려올 건데, 그때 팔로우스팟을 켜고 거길 따라가면 돼. 처음엔 조금 빗나가도 괜찮아, 점점 맞춰나가면 되니까.
[player]알겠습니다, 모르면 물어볼게요.
[조명 기사]그래. 그럼 난 다른 쪽을 보러 갈 테니까, 혹시 무슨 일 있으면 불러.
경쾌한 음악이 울려 퍼지며, 세 갈래의 조명이 순서대로 무대 중앙을 비추곤 사라의 모습을 밝혔다.
[player]……
주인공이 무대에 오른 걸 보고 나는 팔로우스팟을 켜고 계단을 따라 사라의 발밑을 비췄다. 이 댄스는 도입부에 움직임이 적은 편이어서 다행히 조정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player]이 멜로디…… 이제 사라가 움직이겠지. 그럼 조명을 파란색으로 바꿔야겠다……
[조명 기사]어? 젊은 사람이 잘 하네, 어디서 해 봤나?
[player]아뇨. 그냥 이 댄스를 많이 봐와서, 사라가 움직이는 동선이라든가, 조명이 어디서 무슨 색으로 변하는지 정도는 어느 정도 기억하고 있어요.
[조명 기사]하하, 우리가 대단한 팬을 모셔왔네. 그럼 걱정할 필요 없겠는걸? 그럼 맡겨 두겠네.
[player]맡겨 주시죠.
그건 그렇고, 이 팔로우스팟은 생각보다 조작이 어려웠다. 설비가 노후된 탓에 힘을 주지 않으면 쉽게 움직이질 않았다.
그렇게 동선과 조명에 신경을 쓰다 보니, 어느샌가 이마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player]그래도 재밌네.
사라가 무대 위에서 훨훨 날고, 나는 팔로우스팟으로 그녀의 모습을 쫓았다. 마치 우리 사이에 어떤 기묘한 상호작용이 나타난 듯했다.
[player]내가 만약 조명 그 자체라면, 난 지금 사라와 함께 춤을 추고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자, 나는 배경 음악을 흥겹게 따라 부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방심한 탓인지, 결국 조작에 문제가 생겼다……
[player]아, 이런……
정신을 차려 보니 조명은 이미 정해진 동선을 벗어난 상태였다. 결국 사라의 옆에 불안정한 궤적이 그려졌고, 다행히 사라의 수려한 동작들로 인해 그렇게 위화감이 들지는 않아 보였지만, 난 부디 관객들이 그녀의 춤에만 집중해 주길 기도했다.
[조명 기사]이봐, 젊은이……
[player]아, 바, 방금 전엔, 죄송해요……
[조명 기사]혹시, 방금 그 연출을 다시 한번 해 볼 수 있겠어?
[player]에? 뭐, 뭘요?
[조명 기사]그거, 방금 보여 준 조명이 막 흔들리는 연출 말이야. 어떻게 한 거야? 재밌는걸?
[player]……방금 그건 갑자기 떠오른 거라, 어떻게 한 건지 벌써 까먹었어요.
[조명 기사]에고, 아쉽네. 그럼 좀 이따 혹시라도 떠오르면 다시 시도해 봐!
[player]네, 네에……
조명 기사 영감님의 격려는 고마웠지만, 막상 난 방금 전 상황으로 인해 멘탈이 무너질 뻔했다. 그렇기에 지금은 도리어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사라]……
[player]응?
착각인가? 방금 사라가 날 잠시 바라본 것 같았는데, 거기다 윙크까지 해 주다니.
……괜한 생각이겠지? 사라는 평소에도 관객과 교감하는 걸 좋아했다. 그러니 김칫국 마시지 말고 그냥 조명에나 집중하자.
사라의 댄스가 끝나고, 이어서 라이언의 마술 공연이 시작됐다. 여기서는 팔로우스팟이 필요하지 않았기에, 난 땀을 닦고 쉬기로 결정한 뒤 조명 기사 영감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조명 기사]방금 그 조명, 역시 젊은이들은 아이디어가 많아. 자네 같은 신인이 극단에 더 많이 있었다면 사라 단장도 저렇게나 힘들어 하지는 않았겠지.
[player]과찬이세요. 근데 아까 티켓 담장자분께도 극단 스태프들 대부분은 나이가 꽤 있는 분들이라고 들었었는데, 혹시 왜 젊은 사람들을 모집하지 않는 건가요?
[조명 기사]사실 극단에도 젊은 사람들은 있었지. 단지…… 아니다, 안 좋은 얘기는 굳이 꺼내지 않으마. 어쨌든, 지금 극단은 우리 같은 늙은이들 먹여살리기도 바빠서, 새로운 사람을 모집할 여유가 없어.
[player]그렇군요.
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궁금하긴 했지만, 조명 기사 염감님의 표정이 어두워 보였기에 이번엔 그냥 묻지 않고 넘어가기로 했다.
[조명 기사]……물론 나도 불평할 자격은 없지. 사실 단장이 그냥 우리 같은 늙은이들을 버리면 되는 일이니까 말이야, 그러면 여유가 생길 거야.
[조명 기사]사람은 못 구하더라도, 극단의 입이 줄어들면 매주 이렇게 힘든 공연을 하지는 않아도 될 테고…… 하지만 우리가 과연 극단을 나가면 어디를 갈 수 있을까, 그냥 하루살이가 돼 버리고 말겠지.
[player]……선생님은 극단에 얼마나 오래 계셨나요?
[조명 기사]젊을 때부터 있었으니까, 정확한 햇수는 기억이 안 나는군.
[player]아마 다른 스태프분들도 그렇겠죠? 우선 감사합니다.
[조명 기사]뭐가 고마워, 자네는 도와주러 온 입장인데 말이야. 오히려 우리가 고마워해야지.
[player]하하, 당연히 감사해야죠. 만약 여러분이 없었으면 지금의 Soul도 없었을 거예요. 그럼 저도 사라가 무대에서 빛나는 모습을 볼 수 없었을 거구요. 그러니까 팬으로서 여러분께 감사하는 건 당연하겠죠?
[조명 기사]……허, 젊은이가 말은 참 잘하네.
[player]빈말이 아니에요. 그리고 제가 어떻게 생각하든, 사라는 여러분을 짐으로 생각하지 않을 거라고 믿어요.
나도 어떤 확신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사라를 알게 되고 지금까지, 그녀가 무언가를 원망하는 걸 본 적은 없다. 그녀는 언제나 웃으며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해 왔다, 언제나……
지금 Soul에 많은 문제가 있다는 건 알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과연 내가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가능하다면 힘이 닿는 대로 돕고 싶다. 마치 오늘처럼……
[사라]시릴라한테 사정은 들었어, 티켓 담당자분도 반나절 쉬었더니 많이 좋아지신 것 같고.
[사라]고마워, 당신. 맞다, 이따 우리랑 같이 식사하는 건 어때? 오늘 도와준 것에 대한 답례로…
[player]좋아, 그 말을 들으니까 배가 고파오네.
[player]오늘 같은 일이 또 생기면 나한테 전화해 줘, 여유가 되면 도와주러 올게. 나이 드신 분들은 언제 컨디션이 나빠질지 알 수 없으니까 말이야.
[player]……
[player]……왜, 왜 갑자기 조용해져, 혹시 내가 뭐 이상한 말이라도 했어?
[사라]아니. 그냥, 당신처럼 이상한 사람은 처음이라서.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도와주려고 하다니.
[player]이상할 거 없어, 사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팬으로서, 사라 네가 무대에서 춤추는 모습을 더 보고 싶을 뿐이야. 네 춤을 볼 수만 있다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사라]……후훗, 고마워요 손님. 그럼 혹시라도 나중에 급한 일이 생기면 부디 도와주세요.
[player]'부디'까지 붙여가면서 말할 필요 없잖아.
이후, 나는 가끔씩 오늘처럼 Soul극단의 일을 돕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