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are here

학교로 도망친다

카페에 숨어서 유즈가 지나가기를 기다린 후,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가는 거다. 이 방법으로 유즈의 추격을 피할 수 있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다시 마주치지 않을 거라는 보장도 없었다.
……아사바 고등학교로 대피하는 건 어때요?
괜찮을까? 학교 규칙상으론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애완동물을 데리고 오지 못하게 되어 있긴 하지만… 오늘은 휴일이라 유즈가 개를 데리고 학교에 간다고 해도 아무도 막지 않을 텐데.
다 생각이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가시죠, 여기서 시간을 지체하면 유즈가 쫓아올지도 몰라요.
……할머니, 다리가 불편하시니 다음에 외출하실 땐 옆에서 같이 있어 줄 사람을 구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안그러면 혼자서 횡단보도를 건너는 게 너무 위험해요.
홀홀…… 고맙네. 정말로 친절한 아가씨구만.
내가 방금 전에 표지판을 제대로 못 봐서 그런데, 괜찮다면 다시 반대편으로 데려다 주지 않겠나? 괜히 고생시키는구만.
그, 그러세요? 죄송해요, 지금 당장 반대편으로 같이 가드릴게요!
홀홀홀…… 다른 사람의 등에 업혔던 건, 아마 젊었을 적 영감의 등이 마지막이었겠지……
후배 군, 오래 기다렸지? 이제 가자! 두 블럭만 더 가면 학교야.
도망치면서 다른 사람까지 돕다니, 그러다 잘못하면 잡히는 거 아니에요?
어쩔 수 없잖아. 곤란한 사람을 봤는데 가만히 내버려 둘 수도 없고 말이야.
중간중간 계속 멈춰대고 있는데도 아직 유즈가 우릴 쫓아오지 못했다니. 운이 좋은 건지, 아니면 좋은 일을 한 것에 대한 보답이 따라온 건지 모르겠네요.
헤헤, 당연히 후자지!
가시죠, 이 블럭만 지나면 학교예요.
나나, 안에 있지? 빨리 나와.
미안하지만, 우리는 오늘 렌을 도와주려고 학교에 나와 있는 거야. 유즈, 너도 같이 렌을 도와주러 온 거야?
큐르?! 부, 부회장이 안에 있다니…… 이런, 쫓아다니는 것만 신경 쓰다가 여기가 학생회 사무실이라는 걸 잊었어……
컹!
쉿! 조용히 해, 오레오. 빨리 가자, 다른 곳에서 놀자.
렌이 네가 학교에 개를 데려온 거냐고 묻고 있어.
아니아니아니, 내가 학교에 개를 데려왔을 리가 없잖아! 유즈는 방해 그만하고 이제 가보도록 할게!
후후, 역시 부회장의 위엄이란.
학생회 사무실로 도망치고 부회장을 들먹어서 유즈를 도망치게 만든다. 꽤 하는데, 후배군? 좋은 아이디어였어.
그러니까 좋은 생각이 있다고 말했잖아요.
급하게 나갈 거 없이, 유즈가 학교에서 나가는 걸 확인한 후에 나가도 늦지 않아요. 마침 창문으로 교문을 볼 수 있으니까……
우리는 잡담을 나누면서, 유즈가 학교에서 나가는 걸 확인한 후에야 학생회 사무실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선배는 왜 개를 무서워하는 건가요? 개한테 물린 적이라도 있어요?
후배 군은 독심술이라도 배웠어?! 정확하게 맞췄어. 어렸을 때 개한테 물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부터 개가 무섭더라고.
물론 모든 개가 사람을 무는 것도 아니고, 나도 그걸 알고는 있지만 말이야……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라는 속담도 있잖아요. 더군다나 선배는 어렸을 때 개에 물린 거니까요. 더군다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는 더욱 오래 가죠.
개에 물렸을 때의 그 흉악한 눈빛을 잊을 수가 없어. 게다가 그 개는 날 물기 전까지 아무런 표현도 하지 않았단 말이야……
그래서 지금도 눈앞에 있는 개가 아무리 온순하게 굴어도 섣불리 손을 대진 못하겠어. 에이, 나는 정말 별로라니까……
그런 식으로 자신을 비하하지 말아 주세요. 머리로는 알면서도 두려워하는 게 사람이라는 성가신 생물이에요. 그리고 굳이 약점을 극복하려고 하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예요.
……헤헤, 후배 군이 그렇게 말해 주니까 안심이 되는걸.
멍!
어, 어디서 개들이 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설마 유즈가 돌아온 건가?!
긴장할 거 없어요, 유즈가 데리고 있던 말라뮤트는 더 크게 짖으니까요. 보세요, 이건 개들이 싸우고 있어서 나는 소리예요.
놀래라……
사람이 싸우든, 개가 싸우든 멀찍이 떨어져서 상관하지 않는 게 최고야…… 그런데 이상하네, 저 두 아이는 개 옆에서 뭘 하고 있는 걸까?
겁에 질린 듯한 표정을 보니, 아마 개들이 싸우는 소리 때문에 겁에 질려서 몸이 굳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작은 목소리)시간이 지나면 선배가 이전에 무서웠던 기억을 떠올릴지도 몰라. 하지만 아이들을 저대로 내버려 둘 수도 없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
……멍?
아…… 선배, 혹시 돌맹이를 던진 거예요?
어, 응……
멍! 멍멍멍!!!
도, 도망치자! 개들이 쫓아오고 있어! 너희들도 빨리 도망쳐!
감사합니다!!
말라뮤트한테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더니, 이번에는 들개 무리한테 쫓기고 있다.
개를 무서워하는 거 아니었어요?! 개들을 화나게 해서 어쩌자는 거예요!
애들이 무서워하는 모습을 보니까 무의식적으로 움직이고 말았어! 말할 시간에 너도 빨리 도망치기나 해!
멍멍멍!!!!!
누가 들어도 적의를 가지고 있는 소리잖아요. 으…… 차라리 말라뮤트한테 쫓기는 게 낫겠네요!
하아…… 하아…… 하아…… 도대체 언제까지…… 쫓아오는 거야……
시라이시 선배의 숨이 점차 가빠져 왔다. 아무래도 긴장한 만큼 체력이 평소보다 더 빠르게 소모되는 것 같다. 안 그래도 오늘은 하루종일 쫓겨 다닌 만큼, 더 이상은 버티지 못할지도 모른다.
선배, 나무에 올라갈 수 있어요? 선배가 나무에 올라가면 제가 개들을 유인할게요!
안돼…… 나, 힘이 안 들어가. 더 이상은 못 뛰겠어!
머, 멈추지 마세요! 이런, 빨리 방법을 생각을 해야 해……
컹!!
절체절명의 순간, 시라이시 선배와 들개 무리 사이에 유즈와 같이 다니던 알래스칸 말라뮤트가 나타났다! 갑자기 커다란 덩치가 나타나자 들개들은 그 자리에 멈춰서며, 말라뮤트를 향해 불안한 것처럼 낮게 짖기 시작했다.
멍…… 멍……
……컹! 컹컹!
깨개갱……
줄줄이 꼬리를 말고 도망쳤네…… 휴우, 들개들이 독하게 나왔으면 제아무리 말라뮤트라고 해도 힘들었을 텐데, 다행이야.
오레오~ 큐르? PLAYER, 그리고 나나잖아. 왜 여기에 있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실수로 들개 무리랑 마주쳤는데, 말라뮤트가 나서서 우리를 도와줬어. 안 그랬으면 어떻게 됐을지 상상도 하기 싫네.
어쩐지 방금 전에 공원을 지나가던 오레오가 갑자기 흥분하면서 뛰어가더라니, 너희들의 냄새를 맡아서 그런 거였구나.
이 말라뮤트 이름이 오레오야? 고마워, 오레오. 네 예민한 후각 덕분에 살았어.
컹……
들개 무리가 멀리 도망치자, 말라뮤트는 왠지 모르게 실망한 듯 땅에 떨어진 물건을 입에 물고선 시라이시 선배를 향해 다가갔다.
개, 개가 오고 있어! 후배 군, 빨리 쫓아내 줘!!!
오레오는 시라이시 선배의 앞에 멈춰서더니, 더 이상 가까이 가지 않고 계속해서 머리를 흔들어댔다.
……유즈, 오레오가 나나한테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알았어? 맞아. 오레오가 나나를 계속해서 쫓아간 이유는, 바로 입에 물고 있는 물건을 돌려주기 위해서였어.
입에 물고 있는 물건…… 어? 저건 내 예비용 머리끈이잖아?
아까 도망쳤을 때 땅에 떨어뜨렸어. 그걸 오레오가 주워서 돌려 주려고 계속 쫓아갔던 거고.
그랬……구나……
오레오는 시라이시 선배가 자신이 무서워서 다가오지 못하는 걸 눈치챘는지, 조심스럽게 머리끈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머리끈을 주운 선배는 얼굴을 붉히며 오레오를 바라보았다.
미안해, 난 네가 쫓아오는 게 날 놀리려고 그러는 줄로만 알았어. 물건을 돌려줘서 고마워. 그리고…… 날 지켜줘서 고마워.
후배 군, 나 대신 오레오의 머리를 쓰다듬어 줄 수 있겠어? 내가 직접 쓰다듬고 싶지만 아직 겁이 나서……
물론이죠, 저한테 맡겨 주세요. 도망치지 않고 감사 인사를 하려던 것만으로도 이미 큰 발전인걸요.
잘했어. 오늘 하루 종일 고생했어, 오레오.
컹컹.
고맙다는 말은 유즈가 대신 전해 주겠어……
……컹.
큐르르? 오해라고?
오레오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아까 나나는 오레오가 자기를 지켜줬다고 했잖아, 그런데 오레오는 나나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를 못하겠대.
어…… 내가 표현을 제대로 못 했나?
그렇게 하루종일 얘기해 봤자 이해 못할걸? 이 몸이 번역해 주지멍.
멍지로, 어쩐 일이야?
산책 중에 젊은 개 몇 마리가 "공원에 키메라가 있어"라고 떠드는 걸 들어서, 도저히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와봤다멍.
키메라는 무슨, 알래스칸 말라뮤트 친구잖아. 젊은 개들은 아무것도 모른다니까멍.
개들이 '키메라'는 알면서 왜 알래스칸 말라뮤트를 모르는 건지에 대해선 태클 걸지 않을 테니까, 일단 오레오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얘기해 주면 안 될까?
좋다멍. 형제, 방금 전에 오해라고 한 건 무슨 뜻이냐멍?
컹, 컹컹컹…… 컹!
멍멍, 그렇게 된 거구나. 내가 말라뮤트 친구의 말을 전해 주겠다멍.
들개들이 너희들을 괴롭히고 있었던 거야? 깜짝 놀랐네, 나는 너희들이 놀고 있는 줄 알고 일부러 빨리 왔던 건데, 들개들이 왜 그렇게 빨리 사라진 거야? 라고 말했던 거라고 한다멍.
그래서 아까 시라이시 선배가 자기를 지켜줬다고 했을 때 무슨 소리인지 이해를 못했던 거구나…… 아니, 고작 몇 번 컹컹거렸을 뿐인데 이렇게 길게 말했다고?!
개의 언어를 인간이 이해할 필요는 없지. 어쨌든 간에 이런 상황이다멍.
……하하하, 생긴 건 박력있어 보이는데, 보기보다 천진난만한 녀석이었네?
큐르르, 말라뮤트는 반전매력이 있는 편이지. 오레오는 다른 개들보다 더 무신경한 편이야. 다른 사람이 욕을 해도 그냥 놀자는 줄 안다니까. 강하게 생겨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이리저리 치이는 신세였을 거야.
걱정할 거 없어, 나나. 오레오는 비교적 친근하게 구는 데다가, 뛰어노는 걸 좋아해서 평소엔 엄청나게 온순하거든. 오레오랑 자주 놀다 보면 분명 개를 무서워하는 약점도 극복할 수 있을 거야.
동감이야. 아직은 좀 어렵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노력하다 보면 이 커다란 친구랑도 친하게 지낼 수 있겠지.
컹컹!
이 녀석이 네 몸에서 자기랑 같은 냄새가 난다고, 앞으로 친하게 지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다 멍.
같은 냄새…… 그게 무슨 뜻이야?
같은 냄새…… 풉!!
열정적이고, 누구와도 잘 지내고, 달리기를 좋아하고…… 척 보자마자 서로 닮은 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다니, 오레오는 후각 뿐만이 아니라 직감도 굉장히 예리한걸.
시라이시 선배는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우리가 웃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고개를 갸우뚱거리고선 눈을 감았다 떼더니 '알았다'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내 팔에 고통이 전해져 왔다.
자, 잠깐만요! 다들 웃고 있는데 왜 내 팔만 꼬집는 건데요?!
그거야 당연히 네가 제일 크게 웃고 있으니까지! 웃지 마! 으아아아아!! 웃지 말랬지……!